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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자연 앞에서 배우는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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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1-10 23:00:11 수정 : 2023-11-10 23: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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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19세기 초에서 중엽에 걸쳐 나타났다. 절제된 형식과 규범을 강조한 고전주의가 예술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이성적 활동이라고 주장했다면, 낭만주의는 예술과 과학이 서로 다름을 내세웠다.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예술이 이성보다 감성이나 느낌과 관련을 갖는다는 주정적 낭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주지적 낭만주의이다. 주지적 낭만주의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세계를 예술 작품을 통해 상징하고 암시하려 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이 여기에 해당된다.

터너는 초월적인 세계를 어떻게 나타내려 했을까. 거친 파도나 망망대해 같은 대자연의 위협적이며 장엄한 모습을 나타내고, 그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나 한계, 자연에 대한 외경심, 자연의 무한함에 대한 동경 등을 표현하려 했다. 위협적인 자연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만 그 배후의 신비스러운 힘에 대한 동경과 외경심도 갖게 된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윌리엄 터너, ‘좌초된 배를 향하는 구명정’(1840)

터너의 이 그림에는 거칠게 솟아오르는 파도와 먹구름이 좌초된 배와 구명정을 삼켜버릴 듯한 위협적인 바다 풍경이 가득하다. 한 소녀가 그곳을 향해서 절규하듯이 외치고 있고, 어머니처럼 보이는 한 여인은 부서진 배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이 광경을 터너가 물체들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거친 바다를 빛과 색의 효과로 웅장하게 표현해서 공포감을 더했다.

이렇듯 터너의 주지적 낭만주의는 공포와 압박감을 주는 대자연과 작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방식이다. 위협적인 자연 앞에서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며, 무한하고 절대적인 자연 배후의 힘을 향한 동경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공포감에서 시작해서 외경심과 경이로운 감동으로 향하는 숭고의 표현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과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대자연의 세계 앞에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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