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요트族들에게 공포 주기엔 충분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바다의 통로 지브롤터 해협에서 최근 고래가 떼로 몰려와 작은 선박을 공격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이동이 가능한 범고래들이 배의 몸체에 와서 부딪치거나 배의 방향을 잡는 키를 물어뜯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2020년 2월부터 이 지역에서 고래가 선박을 공격한 사건만 500건 이상 발생했다. 올해만 250여척이 손상을 입었으며 그 가운데 25척은 구조대를 파견해 견인해야 할 정도였다. 침몰한 배도 3척이나 되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지브롤터라는 특정 지역의 고래들이 갑자기 지나가는 배를 집단으로 공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리의 범고래가 몇 년 전 지나가는 배의 키에 상처를 입는 사건이 있었고, 이후 가족이나 친척 고래들을 동원해 복수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글래디스(Gladis)의 복수 작전’이라 불리는 흥미로운 해석이다. 글래디스는 검투사를 뜻하는 글래디에이터의 약칭이다. 이 해석이 정확하다면 해당 범고래는 글래디스에서 더 나아가 로마 시대 노예의 반란을 주도한 스파르타쿠스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테다.
다른 한편에서는 복수라는 인간의 감정을 고래에 투영하는 것은 무리이며, 선박 공격이 지브롤터 지역 고래들의 새로운 놀이라는 해석도 있다. 강아지건 호랑이건 동물들도 싸움과 유사한 놀이를 일상적으로 즐긴다. 뒹굴고 부딪치며 물어뜯는 시늉을 한다. 지브롤터의 고래들은 인간의 작은 배를 갖고 게임을 벌인다는 주장이다.
선박 공격은 고래들의 복수일까, 놀이일까. 용어의 선택 뒤에는 서로 다른 인식이 숨어 있다. 바다라는 신성한 영역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인간에 대한 반성이나 후회, 죄책감은 자연의 복수라는 표현으로 반영된다. 반대로 범고래의 놀이라는 시각은 동물을 순진한 존재로 묘사하면서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게끔 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고래와 배의 충돌도 사고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인간과 동물의 상호작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작은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7∼10m에 달하는 큰 범고래들이 갖고 놀기에 좋은 규모의 배란 대개 부호들이 즐겨 타는 레저용 요트다. 대형 유조선이나 화물선은 고래가 부딪쳐 봐야 자기만 다칠 것이고, 고기잡이 어선도 고래들이 물어뜯을 만한 취약한 키를 갖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중해에 요트를 띄워 놓고 노니는 세계적 부호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범고래들이야말로 사회 반란을 꿈꾸는 21세기의 스파르타쿠스처럼 다가온다. 그렇다면 지브롤터의 복수/놀이가 학습 효과를 통해 세상의 다른 범고래에게도 확산할 것인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그리고 태평양까지 지구상 모든 범고래가 요트와 위험한 놀이를 벌인다면 해양 스포츠에 일대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황당한 상상일 수도 있으나 불과 몇 달 만에 전 세계로 확산해 인간의 삶을 수년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는 불확실해졌다. 특히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동물, 바이러스, 식물, 심지어 바다까지도 단순한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는 복합적인 존재임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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