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 영주 문서 한·일 교류사 구체적 양상 담겨
“일본 도자기의 원형이 된 조선 도자기”, “민예미의 시작”
“이도다완(고려다완)은 와비차[侘茶·한적한 정취, 소박하고 차분한 멋 등의 의미인 일본 다도 이념]의 정점으로 평가돼 왔다.…이 작품은 이도다완 중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명품이다.”
소장품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이 글은 일본 고토미술관이 발행한 ‘고토미술관·다이토큐기념문고의 정화(精華)-시대의 미 제4부 중국·조선반도’의 내용 중 일부다. 분야별 대표 소장품을 정리했는데 한반도 유래 유물은 모두 12건이 소개돼 있다.
한국 문화재를 대표 소장품 중 하나로 자랑하는 일본의 박물관은 고토미술관 말고도 꽤 있다. 일본 속 한국문화재가 많기도 하거니와 질적으로도 빼어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국시대 부장품…도쿄박물관의 ‘더없는 보물’
도쿄국립박물관은 일본 유물 109건, 아시아 유물 44건을 선별해 ‘도쿄국립박물관 지보(至寶)’라는 책을 냈다. ‘더없이 소중한 보물’로 스스로 꼽아 정리한 것이다. 자타공인 일본 최대, 최고인 이 박물관 전체 소장품이 11만 여 건이다. 이 중 153건을 고르는 게 쉬울 리 없다. 여기에 소개된 한반도 유래 유물은 8건이다. 그 중 2건-굵은 고리 귀걸이와 기마인물형 토우(두 건 모두 중요문화재)-이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이다.
영혼을 위로하고, 또 다른 세상에서도 안녕하길 기원하며 묻었던 부장품은 사자(死者)의 생전 위세에 따라 달라졌다. 당당한 권세를 누렸던 무덤 주인과 함께 부장된 왕관, 귀걸이, 칼 등은 당대 최고의 공예품으로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것이었고, 길게는 1000년 이상을 세월을 견디고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높은 학술성과 희귀성을 갖게 됐다. 부장품의 문화재적 가치는 여기서 비롯된다.
한국, 중국, 동남·중앙아시아, 인도, 이집트 등의 유물 1만7500건을 모은 도쿄박물관 동양관 ‘조선반도실’(한국실)에서도 전시된 지정문화재 중 상당수가 부장품이라 존재감이 막중하다. 동양관 대표작을 고른 ‘동양미술 100선’에 손꼽힌 한국 유물 13건 중 5개(동물무늬식판·바퀴달린 잔·용무늬 고리자루 큰 칼·맞새김 관모·굵은 고리 귀걸이)가 부장품이다.
지보, 동양미술 100선으로 꼽힌 부장품 대부분은 ‘오구라컬렉션보존회 기증품’이란 점은 기억해 둘 부분이다. 동양관 조선반도실은 ‘오구라컬렉션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구라컬렉션보존회 기증품이 많다.
오구라컬렉션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전기왕으로 군림했던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1964년)의 수집품이다. 한반도의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모든 시대를 망라한 최대, 최고의 컬렉션이다. 1984년에 도쿄박물관에 기증된 1100건에는 약탈품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부장품은 일제강점기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도굴 혹은 일본인 학자들의 약탈적 발굴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도쿄박물관의 자랑거리가 된 부장품은 우리에게는 큰 아픔이기도 하다.
고토미술관이 소장한 한반도 유래 부장품은 일본에서 출토된 것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6세기 경 제작된 ‘금동마구류’로 미야자키현 사이토시 사이토바루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나왔고,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고토미술관의 금동마구류 설명은 고대 한반도의 일본열도에 끼친 영향을 일본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권력의 상징으로서 마구를 부장한 삼국시대 고분이 많다면서 이 유물이 대륙(중국)에서 가져온 박재품(舶載品)일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것인데 중국에서 왔다’는 희한한 설명이다. 한반도의 영향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한반도를 중국 문화가 일본으로 수입되는 경유지 정도로 평가하려는 태도가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한국 문화재를 설명할 때 중국의 영향을 강조하는 경향은 다른 박물관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쓰시마 영주가 위조한 조선임금 도장
열도 남단의 규슈는 일본이 외부세계를 잇는 통로였다. 이런 이유로 규슈국립박물관은 “일본 문화의 형성을 아시아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는 설립 목적으로 표방한다. 이 곳에 한국 등 외국과의 교류를 증언하는 유물이 많은 이유다.
‘쓰시마 소가 문서’(對馬宗家文書)는 규슈박물관이 꼽는 ‘명품 50선’ 중 하나다. 소가는 가마쿠라시대부터 메이지시대 초기까지 약 600년간 쓰시마를 지배한 일족이다. 부산, 에도, 나가사키 등에 거점을 두고 조선과의 외교·무역을 주도했다. 이런 활동의 구체적인 양상을 담은 소가 문서는 약 12만 점이 현전하는 데 대부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규슈박물관은 1만4741점(중요문화재 1만4078점, 미지정 663점)을 갖고 있다.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된 것이란 한반도 유래 유물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조선의 외교, 통상 기관에서 발급한 문서나 조선 관리의 편지 등이 포함되어 있어 눈길이 간다. ‘爲政以德‘(위정이덕)을 새긴 조선 임금의 도장을 위조하기도 했다는데 소가가 조선과의 통교권 유지에 얼마나 골몰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규슈박물관은 소가 문서를 “조선, 일본의 우호적 외교, 무역 관계의 증거”라며 “근세 다이묘(영주) 가문 자료 중에서도 귀중한 존재”라고 평가했다.
교토 고려미술관의 조선통신사행렬도도 일본에서 제작한 것이지만 양국 교류의 가장 선명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소가 문서와 성격이 비슷하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통신사기록물’ 중 하나여서 고려미술관이 크게 자랑한다. 두루마리 형태의 행렬도 4권을 합치면 길이 108m로 현전하는 통신사 관련 그림 중 가장 길다. 1711년(숙종37년) 조태억이 이끈 통신사 행렬을 그렸다.
◆일본 도자기의 원형이 된 조선 도자기
“가장 일본적인 취향의 따뜻한 작품.”
소장 중인 고려·조선 도자기에 대한 네즈미술관의 자평이다. 다도에 심취했던 설립자 네즈 기하치로의 영향으로 이도다완을 다수 갖고 있던 네즈미술관은 1954년 아키야마 준이치가 자신의 고려·조선 도자기 컬렉션을 기증하면서 “감상용 도자의 세계를 열었다”고 한다. 아키야마의 기증은 이 미술관에 그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
‘네즈미술관장품선’(根津美術館藏品選) 공예편에 실린 ‘청화추초문호’(靑花秋草文壺)에 대한 설명이 특히 눈길을 끈다. “부드러운 표면의 백자에 연한 청색 안료로 그린 가을 화초가 이마리도자기(伊萬里燒·해외에서 큰 인기를 끈 일본도자기)의 원형으로 불리며 감상의 큰 즐거움을 준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일본민예관에는 이 도자기와 기형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의 무늬를 그린 ‘백자청화초화문각호’(白磁靑畵草花文角壺)가 있다. 이 도자기는 민예관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민예관 설립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일상을 꾸민 공예미에 눈을 뜨고 나중에 ‘민예’(民藝)라는 개념을 만드는 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민예관은 야나기가 이 도자기와의 만남을 계기로 “이름없는 장인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 가진 신비로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려불화의 최고봉”, 가가미신사의 수월관음도
고려불화는 일본 속 한국문화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종주국은 한국이지만 최대 소장국은 130점 정도가 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다. 고려불화 20점을 모은 규슈국립박물관의 ‘숭고한 믿음의 아름다움-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불교미술’은 일본이라서 가능한 전시회라고 해도 좋다.
가로 2.5m, 세로 4.2m 크기의 사가현 가가미신사 소장 양류관음도(수월관음도)는 전열장 위·아래를 꽉 채운 대작이다. 1812년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엔 지금보다 훼손이 덜해 세로 1m, 가로 25㎝ 정도 더 길었다고 한다. 규슈박물관은 “현전하는 고려불화 양류관음도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다. 고려불화의 최고봉”이라고 소개했다.
수월관음도는 고려불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도상이지만 지장보살을 소재로 한 빼어난 작품도 많다. 가나가와현 엔가쿠지 소장 지장보살도는 지장보살 앞에 도명화상과 더불어 무독귀왕(無毒鬼王·전생에 지장보살을 저승으로 안내했다는 왕)을 그려 고려의 독자적인 지장신앙 형태를 드러냈다.
고려불화를 여러 점 소장한 네즈미술관도 일본 곳곳의 고려불화를 모아 2017년 ‘고려불화-향기가 나는 장식미’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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