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관, 은폐·왜곡 ‘월북몰이’
文 전 대통령 조사 성역 안 될 일
2020년 9월22일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은폐·왜곡을 둘러싼 감사원의 최종 감사 결과가 어제 발표됐다. 감사원은 이날 청와대 국가안보실, 해양경찰, 통일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관계 기관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 이대준씨 사망 전에는 손 놓고 방치했고, 북한의 피살·시신 소각 후에는 사건을 덮으며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결론 냈다. 사건 발생 3년3개월 만에 감사를 통해 월북몰이 전모가 밝혀진 것은 만시지탄이나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감사 결과를 보면 마치 관련 부처가 공모라도 한 것처럼 이씨 피살 사실을 외면하고, 증거를 왜곡·인멸까지 했다. 중대범죄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위기 관리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사건 당일 오후 북한 해역에서 이씨가 생존 상태로 북한 당국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보고받고도 구출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통일부 등에 위기 상황을 전파하지도 않았으며, 최초 상황평가회의조차 없었다고 한다. 결국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총체적 위기 관리 시스템 붕괴로 이어진 것 아닌가.
이씨가 북한에 의해 피살·소각된 이후 관계 기관들은 저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료 등을 삭제·왜곡하며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기 바빴다. 해경은 여기에 사실관계를 끼워 맞췄다.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에 반하는 정보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고, 이씨에게 도박 관련 빚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도박 중독자로 몰아갔다. 당시 문재인정부가 ‘종전선언’에 목을 매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런 은폐와 왜곡이 북한 감싸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번 감사에서도 문 전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 모든 관련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사건 은폐와 왜곡에 매달렸는데도 대통령의 관여가 없었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그래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진실을 밝혀내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하더니 관련 내용을 15년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정보 공개를 막고 봉인까지 하지 않았나. 그러고는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에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며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감사원 조사가 싫다면 유족에게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 실체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대통령이라고 조사의 성역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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