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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욘사마를 좋아하셔서….”

학창시절 홈스테이를 온 일본인 친구는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로 배우 배용준의 사진을 사야 한다며 수줍게 말했다. ‘TV에서만 보던 욘사마 열풍이 정말 있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욘사마로 불리는 배용준의 일본 현지 인기는 연일 화제였다.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욘사마를 외치며 공항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은 강렬했다. 도쿄의 가장 번화가인 신주쿠 중심지에 거대하게 자리한 배용준의 광고 보드는 ‘한국이 해냈다’라는 인상까지 줬다.

박미영 산업부 기자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는 새로운 욘사마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최근 방문한 도쿄 신오쿠보 거리는 한국보다 더 한국스러운 풍경이었다. 한 건물을 가득 채운 아이돌 굿즈숍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크로플과 십원빵, 핫도그 등 길거리 음식을 볼 수 있었다. 이들 상점엔 사람들의 줄이 늘어섰다. 한인마트에서는 한국 라면과 음료, 과자를 사러 온 일본인들로 발을 내딛기도 어려웠다. 즉석에서 만든 김밥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이게 더 맛있을 것 같다’라며 깊은 냉동고를 헤집어 간장게장을 골라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먹거리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한국 브랜드를 모아놓은 화장품 매장은 K뷰티를 쇼핑하러 온 젊은 여성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욘사마와 삼겹살이 전부였던 옛날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한류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1990년대 중화권에서 시작된 ‘H.O.T. 신드롬’부터 30여년 동안 그 모습과 대상을 바꿔가며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빌보드를 점령한 BTS를 비롯해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영화·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했다. 덩달아 인지도가 높아진 한국 라면과 미국에서 품절 사태를 일으킨 냉동 김밥까지 K푸드도 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때로는 우리에게도 신선한 모습으로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가속하고 있다. 특히 유통·식품 산업의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하나둘 확대되는 현지 공장과 100호점, 1000호점을 바라보는 현지 매장들. 내수 시장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현지화 전략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K열풍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그 원동력은 결국 끊임없이 개척과 도전을 이어나가는 한류 정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한 도전과 실패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류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류 정신’만 남고 ‘한류’는 사라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한국의 것이 인기를 끈다고 해서 특별한 현상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 때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흥행하거나 미국에서 온 햄버거를 줄 서서 먹는다고 해서 미류(美流)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굳이 K를 붙이지 않아도 고유명사만으로도 각각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


박미영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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