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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지연·방어권 남용에 전문가들 “구속기간 제한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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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09 13:16:26 수정 : 2023-12-15 14: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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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양상 다양화와 방어권 남용으로 인해 재판이 지연되는 현실에 맞춰 피고인의 구속기간을 유연화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피고인이 석방될 경우 증거인멸, 도주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8일 대검찰청 주최로 열린 제4회 형사법 아카데미에서 발표자로 나선 이원상 조선대학교 교수(법학)는 “재판 중 구속기간에 대한 법률상 제한을 폐지해 사건 별로 법원이 연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는 방어권 남용 행위에도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대검찰청은 8일 별관에서 ‘제4회 형사법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황태정 경기대 교수(경찰행정), 이원상 조선대 교수(법학), 김종근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 차승민 변호사(법무법인 평안), 손정아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1부 ‘재판 중 구속기간 개선’에 대한 발표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대검찰청 제공

이 교수는 “최근 재판 업무의 증가, 공판절차 정지 규정 남용에 따른 심리 지연 등으로 재판 중 구속기간이 유연해질 필요성이 제기된다”며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의 경우 구속기간의 제한이 없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절차가 함께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구속기간 연장에 대한 법원의 재량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특정 사유에 한정해 연장하거나 매 기일 보석 심사를 실시하는 것, 석방심사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을 제안했다.

 

토론자들은 증거 조사, 사건 병합, 피고인 요청에 따른 기일 연기 등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 1·2심의 최대 구속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기본 구속기간을 6개월로 설정하고 3차에 한해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재판부 기피 신청 등 형사소송법이 허용하는 절차에 따라 공판이 정지되면 그 기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지난해 구속기간 내 처리 못한 사건 1795건…석방 후 증거인멸·도주 우려 커

 

현행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에 대한 1심 구속기간은 6개월로 제한된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은 2개월간 구속하되, 2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상소심(2심·3심)에서는 3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근 증거의 적법성에 대한 법리가 까다로워지고, 법정 진술에 우의를 부여하는 공판중심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사안이 복잡한 경제·부패 범죄는 6개월 이내에 판결을 선고하기 사실상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1심 구속사건 1만8371건 중 최대 구속기간인 6개월 이내에 처리하지 못한 사건은 1795건(9.7%)이었다. 이중 2년을 초과한 사건도 103건(0.5%)이다.

 

구속기간 6개월이 도래한 피고인은 구속기간 만료 또는 보석으로 석방되는데, 이들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위험이 있다. 손정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피고인은 석방 후 얼마든지 증인들을 찾아가 합의를 빌미로 허위 진술을 유도하거나 증인 출석을 거부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재판 경과를 보고 중형을 예상하고 도주하는 사례까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구속기간 내에 공판을 마무리하기 위해 심리가 완전히 이뤄지기 전에 재판을 종결하는 경우가 있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차승민 변호사(법무법인 평안)는 “일부 피고인은 구속기간이 무기한으로 갱신돼 연장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충분한 재판기간을 확보해 공소사실을 다퉈보길 희망하기도 한다”며 “피고인에게 서면으로 동의를 구해 피고인이 희망하는 기한까지 구속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전경. 뉴스1

◆“‘방어권 남용’으로 재판 지연되면 구속기간 연장해야” 

 

형사소송법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구속기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구속은 피고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방어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피고인의 ‘방어권 남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른바 ‘창원간첩단’ 의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 활동가들은 지난 3월15일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관할이전 신청, 국민참여재판 신청, 법원의 국민참여재판 배제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및 재항고로 시간을 끌면서 1회 공판기일이 구속기간 만기인 9월14일에 임박한 8월28일에서야 진행됐다. 이 같은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피고인이 방어권 남용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면, 지연되는 기간만큼 구속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교수는 “피고인 중 일부가 일부러 재판을 지연시켜 형사재판의 기간이 늘어나고 있는 측면도 있다”며 “적어도 현행 법률이 제한하고 있는 법적 구속기간의 한계를 도과하더라도 피고인이 방어권을 남용했다면 법원이 지연된 기간을 고려해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고의적인 재판 지연으로 인한 지연기간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김종근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은 “피고인의 고의적인 재판 지연행위가 인정된다고 해도 이에 따른 지연기간을 산정해야 한다는 또 다른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며 “또한 피고인 측의 고의적인 재판 지연의 문제는 불구속 사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불구속 사건의 경우 이런 행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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