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소비해도 투자되는 기묘한 현상 나타나
21세기 자본주의의 놀라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명품 산업의 세계적 성장이다. 프랑스의 루이뷔통(LVMH)과 커링(Kering)은 다수의 명품 브랜드를 총괄하는 지구촌 공룡 기업집단이다. 두 거대한 공룡의 세계 시장 전략이 2023년 크게 차별화되는 모습이라 흥미롭다. 커링은 구찌와 발렌시아가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중고 시장에 시험적으로 뛰어든 반면, 루이뷔통은 신제품 생산에만 주력하겠다는 전략이다.
옷이나 핸드백과 같은 액세서리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구찌는 사용하던 중고품을 가져오면 특정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가치를 평가한 뒤 신제품을 살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유럽 일부에서 이런 실험을 통해 구찌는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중고 시장 참여를 저울질하겠다는 심산이다.
루이뷔통은 중고 시장 활성화가 신제품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거부감을 보인다. 장롱에서 잠자는 명품들이 모두 시장으로 흘러나와 신제품의 판매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 게다가 ‘신상(新商)’ 판매의 부진은 곧바로 LVMH 그룹 주가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 유럽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가치를 드러내는 기업으로써 걱정이 앞서는 듯하다.
중고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커링의 전략은 단기적 손익의 계산뿐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반영한다. 일단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중고 거래의 활성화를 언급하는 한편, 실제로는 고객의 정보를 세밀하게 파악하면서 소비의 행태를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고급 정보를 모은다.
중고 거래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중요한 변화는 빈티지 현상이다. 일반적으로는 새 제품이 중고보다 비싸나 일부 상품은 오히려 과거의 제품이 새 상품보다 더 높은 시장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제한된 숫자로 과거에 생산된 상품에 대해 많은 수요가 생길 경우, 또는 현재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등이다.
예를 들어 포도주 시장은 생산한 해에 따라 품질이 다른 상품에 다른 가격을 적용해 왔다. 자동차도 예전에 생산된 모델이 소비자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며 높은 가격으로 치솟는 일이 적지 않다. 최근 에르메스나 샤넬 가방은 생산량이 세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경매 시장에서 중고 거래가 활성화된 사례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뤽 볼탄스키와 아르노 에스케레는 2017년 출간된 ‘풍요’라는 저서에서 새 자본주의의 다양한 경향을 분석한 바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부가 누적되는 풍요의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함과 동시에 만인의 상인화가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과거 자본주의에서는 각자 생산자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소비자로 상품을 사서 써버렸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이 오래 계속되면서 집안에 쌓이는 물건들이 잘 보여주듯, 신자본주의 시대는 거대한 풍요와 축적이 이뤄져 각자가 생산자·소비자일 뿐 아니라 상인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예전에 비싼 명품 가방을 사는 일은 돈을 써버리는 행위였다. 기껏해야 들다가 싫증 나면 동생이나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21세기 명품 쇼핑은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고, 운이 좋으면 더 비싸게 다시 팔 수도 있다. 덕분에 부자들은 돈을 쓰며 소비해도 결과적으로 투자가 되는 기묘한 부익부 현상은 강화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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