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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고립·병든 가족과의 단절… 혹독한 현실 속 고통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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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13 07:30:00 수정 : 2023-12-13 01: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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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평

단편소설 부문
구조·문장력·개연성 등 수준 고루 향상
상투성 탈피 다양한 서사적 변주 시도
상당수 다중우주 콘셉트 채택 인상적

시 부문
시적 발견·독창적 화법·진정성 살펴
감상적 어투는 줄고 공상적 소재 늘어
고령 응모자들도 상당한 성취 보여줘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신진 작가의 산실 역할을 해온 202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지난 8일 성황리에 끝났다. 소설 부문은 소설가 안보윤, 정길연, 해이수, 평론가 오태호씨가, 시 부문은 시인 박지웅, 천수호씨가 각각 맡아서 수고했다.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이뤄진 이날 예심을 통해 단편소설 12편과 시 18건이, 예심을 거치지 않는 평론 응모작과 함께 본심으로 올라갔다. 최종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되고 당선작은 세계일보의 2024년 신년호 지면을 통해 소개된다.

 

202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무사히 성료됐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의 내용과 수준은 더 풍성해지고 높아졌다며 “청년세대의 궁핍과 고립, 세계에 대한 불신이 고통스러울 만큼 선명했다”고 평했다. 왼쪽부터 박지웅 시인, 천수호 시인, 해이수 소설가, 오태호 평론가, 정길연 소설가, 안보윤 소설가. 남정탁 기자

평론을 제외하고 소설과 시 모두 응모편수는 지난해보다 조금 줄었다. 단편소설은 지난해 723편에서 올해 616편으로, 시는 966건(1건당 3편 이상으로, 전체 2898편 이상 추정)에서 952건(2856편 이상)으로 조금씩 줄었다. 평론은 지난해 29편에서 31편으로 조금 늘어났다.

 

하지만 응모작의 내용과 수준은 이전보다 더 깊어지고 높아졌다는 게 예심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소설과 시 중심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경향과 표징을 예심 심사위원들(가나다순)에게 들어봤다.

 

◆소설 부문

 

안보윤 소설가=“현실에 입각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소설들이 주를 이루어 ‘누구도 꿈꾸지 않은 오늘’이 시대적 불안과 우울의 종착역임을 시사하는 글이 많았다. 청년세대의 궁핍과 고립, 세계에 대한 불신이 고통스러울 만큼 선명하게 그려졌는데 이들이 무력감을 넘어 분노로 치닫는 과정을 포착한 소설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병고나 부고로 당도하는 가족 서사도 자주 등장했다. 부모와 불화한 자녀가 끝끝내 부고를 외면하거나 질병 상태의 노인을 명백한 타인으로 치부하는 장면들은 돌봄보다 단절을 선택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어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반면 어둡고 서러운 시기를 건너온 혹은 건너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에 주목한 소설들도 있었다. 삶을 직시함으로써 비로소 한 발을 뗄 용기를 얻은 사람들의 고단한 일과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쪽 발을 움찔거리게 되었다. 위와 같은 부단한 시도들은 결국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조응한 다양성일 것이다. 모두가 이 혹독한 현실 속에서 분노하고 서러워하고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써왔을 테니까 말이다. 고독하고 묵묵하게 이 모든 현실과 마주했을 응모자들께 응원과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오태호 평론가=“‘신춘’이라는 말은 계절적 배경이나 물리적 청춘을 넘어 문청의 가슴을 뛰게 한다. 상상력의 새봄에 대한 심리적 기대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겨울의 한기를 견뎌낼 내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서사적 새로움과 문체적 안정감, 플롯의 적절성 등을 중심으로 응모작들을 검토했다. 천 가지의 표정을 지닌 소재의 각개약진 속에 ‘인공지능과 SF적 가능성의 탐색, 우울과 장애를 다룬 투병 이야기, 욕망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사람 관계, 이방인 같은 비정규직 일상이나 이주 노동자 생활, 반려동물과의 동행이나 이국 여행’ 등 다양한 서사적 변주를 펼치고 있었다.

 

예심 통과의 핵심은 안정감과 새로움의 균형감각이 돋보이느냐에 있었다. ‘작은 이야기로서의 소설’은 독자를 매료시키기 위해 설득력이 필요하다. 그 힘은 단어와 문장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문체적 안정감과 인물의 내면 풍경이 길어 올리는 서사적 긴장감이 오묘한 조화를 이룰 때 발생한다. 절실함을 보여준 응모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성심전력의 표정에 감사를 드린다.”

 

정길연 소설가=“예년보다 응모편수는 줄었으나 수준은 고르게 향상됐다. 구조, 문장력, 핍진성 등 예사롭지 않은 성취를 보여 상대적 수작을 고르는 난감함 속에서도 즐겁고 숙연했다. 파편화한 현대인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인데, 관계성과 연대감이 사라진 자기만의 시공간에서 외부와의 어긋남을 헤집는 고전파와 멀티버스적 세계관을 덧입힌 창작자의 페르소나가 무한증강 상상력으로 현실과 가상을 혼융하는 전위파로 나뉜다. 특히 응모작 중 상당수가 다중우주 콘셉트를 채택했다는 것은 대중문화 전반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는 의미일 테다. 그러나 다초점 세계관이 ‘핫’하더라도 서사의 개연성을 갖추지 못하면 참신함과는 거리가 먼 클리셰가 되고 말 것이다.

 

관심사 및 관점의 쏠림현상은 매체 노출 빈도가 높은 사회문제와 무관하지 않겠다. 정서 장애와 심리 결함, 학대와 폭력, 계층 간 갈등과 불균형, 퀴어, 교권 침해 같은 이슈는 빠지지 않는 소재들이다. 안락사 포함, 죽음을 다룬 작품도 꽤 늘었다. 죽어가거나 지켜보거나 죽음 이후의 과정에 입회하는 당사자 또는 관찰자의 시선을 담았다. 연극 무대적 장치 속에 사유의 여백을 잘 배치해 놓은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이수 소설가=“신춘문예 심사는 기도의 시간이다. 작품 한 편 한 편에 담긴 투고자의 땀과 눈물, 염원을 읽는다. 상대의 손을 붙잡는 대신 보내온 원고를 붙들고 온마음을 집중하여 공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주폭 아빠, 집 나간 엄마, 버려진 아이’가 상당수 등장했다. 이런 가족사 소재는 습작기의 문을 열기에는 다소 도움이 되지만 경연대상으로 뽑힐 만한 새로운 상상력이 되기에는 요원하다. 두 번째로 ‘개와 고양이, 다양한 반려생물’이 출연했는데, 주인공과의 관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거나 그 매듭이 헐거워 보였다. 이들과의 관계가 주목받으려면 두 개의 말굽자석 사이에 형성되는 자기장처럼 상호간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포스트휴먼과 노인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하면 상투성을 벗어나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투고자들의 심정이 느껴졌다. 소설의 소재에 관한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감케 하는 지점이었다.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 ‘프로급 단편’과 조우할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가를 꿈꾸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지금 읽는 행복과 쓰는 기쁨이 충만하다면 그분은 작가와 다름없다.”

 

◆시 부문

 

박지웅 시인=“육필로 쓴 작품에서부터 시집 한 권 분량에 이르는 작품까지 이 땅의 시심이 모인 축제였다. 시적 발화 지점은 다양했다. 중장년층 응모자의 작품에서는 개인과 가족사, 삶에서 만난 여러 사물과 관계에 대한 접근이 많았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 응모자들은 경쟁사회 속의 청년세대가 지닌 위기의식과 1인가구의 고독감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였다. 응모자 952명 가운데 신예로서의 문학적 패기와 실험성을 보인 작품은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예심은 두 심사자가 각각 선정한 1차 통과 작품을 교차해서 확인했다. 2차, 3차 교차할수록 더 까다로운 잣대를 댔다. 먼지가 쌓일 대로 쌓인 대상에 대한 습관적 접근과 식상한 구도를 보이는 작품과 ‘수박 겉만 핥고 후추 통째로 삼키는’ 작품은 내려놓았다. 시적 발견이 있는지, 대상을 나만의 화법으로 구사하는지, 사유의 이미지화에 성공 여부 등을 고려했고 진정성과 함께 비범함에 이른 작품들을 본심에 올리는 기쁨을 누렸다. 시를 앓고 있는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천수호 시인=“작년과 비슷한 응모자 수였지만 작품 수준은 상향됐다. 창작 교실의 활성화나 인터넷 매체들의 영향인지 고령자들의 시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시가 대체로 길어졌고 혼자 즐기며 쓰는 감상적인 어투의 시가 현저히 줄었다. 시의 소재도 다양하여 단순히 사물에 대한 관찰이나 감상보다는 미래 지향적이고 공상적인 소재들이 많았다.

 

올해에는 전쟁으로 지구촌이 들끓어서 세계 경제도 휘청거렸고 사이버 공간까지 위협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빛, 미래, 공상, 시간, 영원 이런 낱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시로써 희망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로 보여서 반갑기도 했지만, 시가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도 적잖아서 생활에서 건져낸 시를 만나면 오히려 귀하고 반가웠다. 스스로를 유령화하거나 말하는 인형이나 개의 모습으로 변형시킨 상상의 목소리도 흥미로웠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언어의 힘을 믿고 그 결을 따라 출렁이는 시는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형식의 시를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심사였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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