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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일본말 ‘사쿠라(櫻)’는 우리말에 건너와 전혀 다른 뜻으로 자리 잡았다. 변절자, 내통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군부정권 시절 집권세력에 협력하는 야당 정치인을 비난할 때 많이 사용됐다. 1970년대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했던 유진산 전 신민당 총재는 사쿠라 낙인이 찍혔던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는 신민당 총재가 된 후 1970년과 1973년 각각 1, 2차 ‘박정희·유진산’ 회담을 갖는 등 여당과의 타협론을 주장했다. 그러자 선명 야당론을 주장하는 윤보선이 그를 ‘사쿠라’라고 힐난하며 별명으로 굳어졌다.

강경파가 중도 또는 현실주의 노선을 걷는 정치인을 회색분자로 폄하하며 사쿠라 딱지를 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진산 사후에도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를 들어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하다. 언론인 출신인 신경식 전 의원도 회고록에서 “진산 사후에야 많은 정치인이 그의 화합과 조정력, 큰 정치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유진산 본인도 생전 사쿠라라고 비난하는 것에 “타협하는 것이 정치”라며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1974년 작고했을 때 그의 재산은 서울 상도동에 집 한 채밖에 없었다. 그나마 은행에 저당 잡힌 상태였다. 생활비로 고생하는 유족을 보고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모금운동을 주선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금일봉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여전히 유진산은 1970년대 ‘중도통합론’을 주장한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와 함께 ‘사쿠라’라고 인식돼 있다.

86세대 운동권 출신으로 친명(친이재명) 핵심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사쿠라’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탈당해 정몽준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통합21에 합류해 ‘김민새(김민석+철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당시 민주당 출입기자였던 필자도 그의 탈당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기와 노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쿠라’라고 낙인찍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김 의원만큼은 이 전 대표를 사쿠라라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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