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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 개의치 않는 ‘까치’
직관에 따라 스스로 길 개척
소유와 경쟁에 집착하는 대신
현재에 충실하면 행복 찾아와

“충만하게 살았고, 충분히 행복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출간된 지 40년, 주인공 ‘까치’를 낳은 이현세 선생이 한 월간지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현세 선생답다고 생각했다.

우리 만화를 대중문화의 핵으로 만들었던 주인공 까치, 그는 누구보다도 직관형 인간이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까치는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인정받는 일에 목매지 않으며 남들의 시선에 휘둘려 삶을 설계하지 않는다. 그는 섬세하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지만, 자기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삶의 징검다리를 놓기 때문에 언제나 ‘현재’에 있다. 현재에 있기 때문에 그 현재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려 하지 않는다. 차곡차곡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움직이려는 사람들에게 까치는 그저 ‘미친놈’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는 종종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래서 제대로 발을 뗄 수 없을 때가 많다. 왜 들판에서 풀을 벨 때는 끝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고 하겠는가. 끝을 보면 막막해진다. 그냥 묵묵히 풀을 베면 어느새 들판은 깨끗하다.

까치는 단순하다.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쓰는 그만의 방법이 있다. “난 네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까치의 이 말은 세계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화시킬 줄 아는 직관형 인간의 사랑의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러면 나쁜 짓 시켜도 할 거냐며 딴지를 거는 사람은 직관의 힘을 모르는 사람이다. 단순화하는 능력은 결코 단순한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적 사유 이전에 직관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자의 생명력이다.

세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쓰며 산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미래를 위해 늘 현재를 희생하면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희생’이 현실인데 무슨 기쁨이 있을까.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경쟁은 만만찮다. 치열하게 사는데 충만하다 느끼지 못하고,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인데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 사는 게 전쟁이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언급했다. 합계출산율 0.78, 흑사병 창궐 이후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보다 낮은 수치란다. 우리의 젊음들이 이 땅이 생명을 낳아 기르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학원에서 학원으로 돌려지고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곳, 학업이 점수이고 경쟁인 곳, 집에서, 학교에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곳, 그곳에서 어떻게 배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누가 행복하다고, 충만하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행복은 언제나 현재에 거하는 자의 것이거늘.

이상한 일이지만 마흔 살이나 된 ‘공포의 외인구단’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원하는 것을 위해 불필요한 것들은 거둬내며 직관을 따라, 마음의 빛을 따라 스스로 길을 만들며 살고 있는 까치 때문이다. 이번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MBC 드라마 ‘연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으로 충만해진 연인이 이제 우리 시시하고 하찮게 돌처럼, 풀처럼 살자고 하는 대목이다. 누가 시시하고 하찮게 살 수 있을까. 소유하는 삶이 아니라 ‘존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명품이든, 집이든, 학력이든, 소유물이든, 직업이든, 인간관계든 가진 것으로 삶을 증명하려 애쓰는 사람은 하찮아질 수 없다.

외인구단의 마지막은 장님이 된 까치가 일상을 잃어버린 엄지를 만나는 장면이다. 까치를 알아보는 엄지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눈물은 돌고 돌아 길을 찾은 사랑의 현현이었을 것이다. 한순간만이라도 세상이 빛으로 충만한 사랑 그 자체임을 경험한 사람은 그 경험으로 시시해질 수 있다. 아집이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아집이 녹아내려야 힘을 빼고 살 수 있다. 그렇게 시시해져야 사랑이 제대로 흐른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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