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국내 관광 트렌드는 ‘MOMENT’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3년간 빅테이터와 전문가 인터뷰, 소비자 설문 조사 등을 분석해서 핵심 키워드를 조합한 것이다. 지역 여행지를 찾아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Meet the local), 걷기 열풍과 같은 야외 활동(Outdoor travel)을 선호하며, 농촌 여행(Memorable time in rural area), 친환경 여행(Eco-friendly travel), 체류형 여행(Need for longer stay), 취미 여행(Trip to enjoy hobbies)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특징은 ‘경험’을 중시하는 세태를 담고 있다. 그저 관광지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관심 분야, 지역을 깊게 체험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사태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중단되다시피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다시 한국을 찾기 시작했지만 예전의 유커(游客)가 아니다. 깃발을 들고 단체로 몰려다니며 면세점 명품을 싹쓸이하고 관광지를 독차지했던 모습은 찾기 힘들다. ‘쇼핑 대신 핫플서 인증샷… ‘취저’ 소비… ‘MZ 싼커’가 떴다’(12월18일자·제주=임성준 기자, 윤준호 기자)기사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달라진 관광·소비 패턴을 다루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경험’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들은 순간(MOMENT)을 즐기며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데서 관광의 의미를 찾는다.
◆“성수동 예쁜 까페에서 사진 찍어요”
대표적인 관광 1번지 명동 거리에서 어묵 노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기자에게 “코로나 19 이전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대부분 단체 였는데 요즘은 친구들끼리 소규모로 오는 경우가 많고,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성수동이나 안국동 등지의 예쁜 카페를 찾아다닌다”고 했다. 광화문이나 경복궁, 덕수궁 근처에는 한복을 입고 ‘인증샷’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도 원도심에 위치한 제주목 관아( 官衙)가 한복을 입은 중국인들로 북적댄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제주목 관아를 찾은 관람객 수는 5만1150명으로 지난해 2만8498명보다 크게 늘었다.
달라진 중국 관광객 문화는 젊은 세대들이 주도하고 있다. 단체 관광에 익숙한 중년층과 달리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소, 여행 일정을 짜며 현지 체험을 하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한국관광공사 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에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은 154만4000여명 이었으며 이중 40세 이하가 67.5%에 달했다. 이들은 K팝과 K 드라마, K푸드 등 한국 콘텐츠에 호감을 갖고 있는데다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세대다.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고 가성비 좋은 소비재를 선호하며, 이를 SNS를 통해 공유하면서 ‘한국을 여행하는 일상의 순간’을 최대한 즐긴다.
◆면세점은 울상, 편의점·로드숍은 미소
이런 달라진 관광 행태는 관련 업계 매출 판도를 바꾸었다. 단체 관광객 재개를 가장 반겼던 면세점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BC카드 신금융연구소가 발표한 중국 은련카드 소비 데이터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 9월까지 중국인이 면세점에서 사용한 비중은 35.9%로 2019년 같은 기간 63.1% 의 절반 수준이다. 제주도에는 크루즈 관광객들도 찾는데 마찬가지로 면세점 소비 비중이 2019년에 비해 절반 가량으로 떨어졌다. 코로나 이후 중국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줄어든데다 관광·소비 패턴 변화로 고가품을 파는 면세점이 찬 바람을 맞은 셈이다. 롯데면세점은 관광객들이 K뷰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중저가 제품 라인을 전진 배치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반면 편의점이나 로드숍, CJ올리브영 같은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 매출은 눈에 띄게 늘었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1∼11월 편의점 CU에서 알리페이·위쳇페이·은련카드 등 중국 카드 결제 금액은 전년 대비 100% 넘게 늘었다. 코로나로 침체됐던 명동의 화장품 로드숍도 최근 되살아나는 추세다. 올리브영 명동타운은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약 3000 명인데 이들 중 90%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우리 관광산업의 ‘큰 손’인 중국인들의 변화에 기업은 물론 관광 정책도 달라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로컬 체험 중심의 관광 상품을 다양하게 내놓고, 간편 결제 편의성도 더 높여야한다는 주문이다.
P.S. 취재한 제주지역 주재 임성준 기자에 물었습니다.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달라진 걸 어디서 가장 실감하나.
“깃발 들고 따라다니는 단체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내 면세점 입구 도로에 주정차하는 대형버스 행렬도 안 보인다. 예전에는 중산층 단체 관광객인 ‘유커’와 면세점 대리 구매 보따리상인 ‘다이궁’, 큰 손으로 불리는 카지노 관광객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20∼30대 개별 관광(싼커)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들은 면세점보다는 국내 중저가 화장품 매장을 찾고, 음식점도 관광객 전문 식당보다 가성비 좋은 동네 맛집을 찾는다. 유커가 지갑을 열지 않는데는 중국의 경기 불황도 주 요인 중 하나다.”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광정책이나 관광업계가 달라져야하는 점이 있다면.
“중국인은 제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55%를 차지한다. 외국인 관광시장 다변화로 중국인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70∼80%를 차지하던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최근 달라진 이들의 여행 패턴, 소비 문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MZ세대 중심의 개별관광객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크루즈 관광을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방문객이 시간을 두고 여행을 즐기도록 체류 시간을 늘려야 한다. 음식, 쇼핑, 즐길 거리 등 다양한 기항지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5∼6시간에 불과한 체류시간을 늘리려면 3000명 기준 1∼2시간 소요되는 법무부의 입국 수속 시간 단축도 요구된다. 입국심사 인력을 늘리면 된다.”
-과거 중국인 ‘큰 손’이 제주 지역 투자를 많이 했는데 최근 투자 양상도 달라졌는지.
“2010년 당시 제주도 한림읍에 들어선 라온프라이빗타운에 중국인들 투자가 100건이나 몰렸다. 한 번에 유치한 투자 금액만 총 496억원에 달했다. 제주특별법에 근거해 관광단지 휴양 체류 시설에 투자하면 거주 비자를 발급하는 부동산투자이민제도가 도입된 지 14년이 됐는데 최근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코로나 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투자 건수 및 투자액은 10건 이하에 30억원 가량에 그쳤다. 부동산 투자이민제도가 제주 지역 난개발과 부동산 가격 과열 현상, 환경 훼손 논란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다보니 제주도 난개발 방지 정책과 중국의 해외 투자 규제가 겹치면서 투자 열기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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