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때 나치·부역자 감시 뚫고 선행
다니엘, 사촌 부탁에 난민 등 구조 도와
결국 체포돼 34세 나이로 수용소서 병사
다니엘 행적따라 이타심·환대 등 고찰
“희생 등 ‘선함’은 과학으론 설명 안 돼”
비바레리뇽 고원/매기 팩슨/김하현 옮김/생각의힘/2만5000원
러시아의 산골마을에서 폭력을 겪은 사람들의 ‘집단 기억’을 연구해온 인류학자 매기 팩슨은, 러시아와 체첸 전쟁을 겪은 뒤 러시아를 떠나서 ‘평화’를 연구하기로 다짐한다. 어느 날, 구체적인 사례를 찾던 그에게 보물 같은 곳이 나타난다. 바로 프랑스 중남부의 산간 지역 비바레리뇽 고원이었다.
비바레리뇽 고원 주민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 정권에 쫓기는 유대인을 비롯해 많은 난민들을 따뜻하게 환대하고 구조한 것이다. 환대 및 구조 활동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농부와 양치기, 우유 짜는 여자들, 상인, 성직자, 교사 등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르는 사람들을 먹여주고, 들키지 않게 숨겨줬으며, 그들의 아이들을 보호소에서 교육하고, 마침내 배에 태워서 안전한 스위스로 탈출시켜주기도 했다. 점령군 나치와 이들에 부역한 프랑스 경찰의 감시를 뚫고 선한 일을 행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헌신이었다.
결국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치와 프랑스 경찰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어야 했다. 야만의 시대, 정규분포 곡선의 가장 끝자리에 위치한 이들 공동체 구성원은 왜 전체가 합심해 목숨을 내걸고 선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개인뿐 아니라 집단도 행동을 취한다’는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분석에 영감을 받았던 인류학자인 저자는 한 공동체가 위험을 무릅쓰고 행하려고 한 ‘평화’와 ‘선’을 연구하기 위해서 비바레리뇽 고원으로 떠난다. 2차 대전 당시 비바레리뇽 고원에서 난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보호소 ‘레 그리용’과 ‘메종 드 로슈’를 관리하다가 나치 경찰에 체포돼 수용소에서 숨진 청년 다니엘 트로크메는 이 탐사의 주요한 길잡이가 된다.
청년 다니엘은 여러 선택지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프랑스 유력 귀족 출신이었다. 명문 에콜 드 로슈를 졸업했고 소르본대에서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하지만 1930년대 유럽은 허공에 쳐든 주먹과 행진으로 가득했고, 좌파와 우파, 국가가 청년들을 맹렬하게 끌어당기던 광기의 시대였다.
프랑스가 이미 나치 치하에 들어간 뒤인 1942년 여름, 사상과 철학은 물론 인생의 진로를 모색하던 다니엘은 사촌인 마을 목사 앙드레 트로크메로부터 프랑스의 중남부 고원 비바레리뇽 고원에 와서 난민 구조 활동을 도와달라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다니엘은 부모에게 다음의 편지를 보낸 뒤 비바레리뇽 고원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저는 오롯이 저 자신이 될 것이고, 저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는 미래가 말해줄 것입니다. 어차피 그것은 오로지 미래만이 말해줄 수 있습니다. 이건 세상의 눈으로 판단하는 성공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제가 모험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모험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다니엘은 비바레리뇽 고원에서 레 그리용의 관리자로 아이들을 열렬히 사랑했고 아이들에게 신의와 사랑을 보여주고자 헌신했다. 독일 경찰과 프랑스 경찰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올 때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제가 편파적인 건지는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정말 놀랍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예뻐하고, 그 대신 아이들은 제게 엄청난 애정을 줍니다… 하루가 갈수록 아이들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유일하게 가슴 아픈 점이 있다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1943년 6월 레 그리용을 덮친 독일 경찰들에게 체포된 뒤 이듬해 4월4일 새벽 나치의 수용소인 마이다네크에서 서른네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사인은 결핵과 장염.
책은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된다. 한 축은 저자가 다니엘의 행적을 중심으로 2차 대전 당시 비바레리뇽 고원의 선행과 아픔을 추적하는 한편, 다른 축은 비바레리뇽 고원의 ‘망명 신청자 환영 센터(CADA)’ 거주민들을 만나고 함께 보내면서 비바레리뇽 고원의 현재와 자신의 학문 여정을 성찰하는 내용으로 이뤄진다. 두 축의 시간대와 주요 인물이 달라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저자의 전략적인 구성과 매끄러운 문장은 책 속으로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망명 신청자들을 바라보면서 인류학자, 사회과학자로서의 태도를 조금씩 내려놓는다. 그리하여 과학으론 이타심이나 희생 등 성스러운 것을 절대로 논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즉, 유대인을 비롯해 얼굴도 모르는 이방인을 환대한 비바레리뇽 고원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서 선함에 기반해 이방인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셈이다.
요컨대, 책은 선함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인류학 연구서이자, 홀로코스트를 고발한 역사서이자, 다니엘 트로크메에 관한 회고록이자, 저자 자신의 학문적 여정과 고민을 담은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그런데 맑은 선함으로 깊은 울림을 준 다니엘에게 어린이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혹시 프랑스 난민 출신인 생텍쥐페리의 책 ‘어린 왕자’ 안에 있는 ‘행성의 장미’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텍쥐페리는 홀로코스트로 고초를 겪던 유대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책에서 어린 왕자는 말했다.
“꽃 한 송이를 사랑하게 된다면, 수백만 개의 별에서 그 꽃 한 송이만 피어나도 그 별들을 바라보며 행복해질 거야.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 ‘저기 어딘가에 나의 꽃이 있어….’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린다면 그 순간 별들이 전부 빛을 잃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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