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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견인’ 탈 쓰고 재산 갈취… 제도 악용 막을 감독인원 태부족

입력 : 2023-12-26 19:17:01 수정 : 2023-12-26 22: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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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0돌 성년후견제도 명암

사무처리 돕는 성년후견인 증가세
서울 후견업무 관리 감독관 15명뿐
2022년 1명당 사건 291건가량 담당
후견 필요성 검토 조사관 2명 그쳐

“韓, 친족이 후견 맡는 경우 대다수
감독관役 중요한데 문제 인지 늦어”

50대 남성 A씨는 4세 수준 지능의 발달장애인 숙부 B씨 소유 아파트를 2020년 대신 팔았다. 집을 팔아 번 10억원가량의 현금을 챙긴 그는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A씨가 B씨의 성년후견인이 된 이듬해 벌어진 일이었다. 이 가운데 5억원을 사업자금과 생활비로 멋대로 사용한 A씨에게 법원은 지난달 12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법원은 대리인 자격으로 아파트를 매매하도록 허가하면서 판매대금을 B씨 통장에 보관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A씨는 이 돈을 자기 통장으로 빼돌렸다. 이 사실을 법원은 뒤늦게야 알았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건 사건 발생 3년 뒤인 지난 1월이다. 시행 10주년을 맞은 성년후견제도의 이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후견을 개시하고 감독하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26일 나타났다.

성년후견제도는 법원이 질병·장애·노령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성년인 사람에 대해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 관리와 신상 보호를 지원하는 제도다. 후견인은 법원의 후견사건 심판을 거쳐 선임되고, 이후 법원은 후견감독사건을 개시해 후견인을 관리한다. 전문가들은 노령 인구 증가로 후견제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한편, 악용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만큼 관련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후견사건이 몰리는 서울가정법원의 후견감독관은 15명에 불과했다. 후견감독관은 후견 업무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후견이 종료될 때까지 사건이 쌓일 수밖에 없는 특성상 서울가정법원의 최근 3년 후견감독사건은 해마다 4000건이 넘었다. 2023년(9월 기준) 4367건, 2022년 4213건, 2021년 4195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감독관 1명이 약 291건의 사건을 감독한 셈이다.

후견 필요성과 지정된 후견인이 적절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후견개시조사관 역시 2명뿐이었다. 2020년 서울가정법원 후견개시 사건 수는 2566건이었는데 조사관 1명이 1000건이 넘는 사건을 담당하는 셈이다. 또 인천가정법원처럼 후견감독 전담 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가정법원의 경우, 가사소송에 대한 자료 수집을 맡는 가사조사관과 법원 직원이 업무를 떠안는 식이다. 법원 관계자는 “후견감독은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이지만 감독관 수가 부족하고 법원마다 인력 차이도 난다”며 “(제도 악용 방지를 위한) 감독 필요성은 증대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충희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사무총장은 “A씨 사건의 경우도 외국으로 떠나고 한참 뒤 인지됐다”며 “감독이 적기에 적절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면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전문 후견인이 아닌 친족이 후견을 맡는 경우가 대다수라 감독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정민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상임이사도 “후견인이 보고서를 1년 넘게 제출하지 않은 시점에서야 뒤늦게 문제를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견개시 역시 빨라야 4개월 뒤에 심문기일이 잡히는 등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 봤을 때 사건 처리 속도가 확연히 늦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성년후견제도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를 연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성년후견제도 시행 10년이 되는 현시점에서 고령 인구뿐만 아니라 발달·정신 장애인에 대한 후견제도와 취약 계층을 위한 공공후견제도의 미비점을 점검, 보완할 시점이 되었다”며 제도적인 보완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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