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도시3’에서 중고차 딜러인 초롱이(고규필)는 차를 보러 온 손님에게 위압적인 분위기를 앞세워 차를 강매하려고 한다. 침수 이력을 속이고 3000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지만 형사(마동석)에게 발각돼 단돈 3000원에 억지로 차를 넘기게 된다.
초롱이는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있을 법한 장면을 실감나게 재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신 스틸러’로 떠올랐다. 이는 중고차 구입 과정이 불쾌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심사숙고해서 매물을 미리 알아보고 중고차를 사러 갔는데 전시장에 가보니 이미 팔렸다고 하고, 문제가 없다는 말을 믿고 중고차를 사왔는데 하자가 끊임없이 발견되는 식이다. 차는 한 번 사면 수년씩 사용하는 고가품이라 잘못 고르면 두고두고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중고차 시장은 이 같은 일부 판매자의 비양심적인 판매행위로 악명이 자자하다. 소비자들이 판매자보다 제품에 대한 정보가 적은 특성상 대표적인 ‘레몬마켓’(저품질 상품이 유통되는 시장)으로 불린다.
최근 중고차 시장에 변화를 줄 계기가 마련됐다. 중소기업에만 허용됐던 중고차 사업이 대기업에도 열리면서다. 중고차 시장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대기업 독점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지난 10월 각각 인증중고차 사업을 시작했다. 자사 브랜드의 차량을 직접 매입하고 검수해 브랜드 이름을 걸고 소비자들에게 다시 판매하는 방식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들 인증중고차가 기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미미해 보인다. 28일 기준 현대차(제네시스 포함)와 기아의 인증중고차 홈페이지에 올라온 매물은 총 549대다. 다른 직영 판매업체는 1만대 이상의 매물을 보유하고 있고, 판매 중개업체의 매물은 17만대가 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구입 5년 이내의 정밀진단을 통과한 차량을 판매하기 때문에 확보할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인증중고차 사업 진출 직후인 11월 전체 중고차 거래량은 총 19만3550대로 전월 대비 4.8%, 전년 동월 대비 2.6% 증가했다. 거래량이 소폭 늘어나긴 했지만 의미 부여를 하기엔 애매한 수치다.
지금 같은 판매 기조가 이어진다면 기존 중고차 시장과 경쟁하기보다는 구분짓기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현대차·기아의 인증중고차는 품질 수준을 높이는 대신 가격 또한 인기 차종의 경우 신차 가격의 90% 수준을 넘을 정도로 만만치 않다. ‘가성비’ 때문에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인증중고차 사업 진출은 시장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잠재력이 있다. 기아가 인증중고차 사업을 시작하며 미지의 영역이었던 중고 전기차 판매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우리나라의 중고차 시장은 신차 시장의 2배에 못 미치지만, 이미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유럽(EU) 등은 중고차 시장이 3배에 달할 정도로 활발하다. 대기업 진출이 중고차 시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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