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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떠오른 갑진년 첫 해…시민 7인의 새해 소망은

입력 : 2024-01-01 09:09:08 수정 : 2024-01-01 1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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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프지 말고 경제 나아지기를"…건강하고 여유로운 2024년 염원
"슬픔 벗어나 당당하게 나아갈 것", "주어진 일에 최선" 다짐도
"새해가 왔다 / 1월 1일이 왔다/ 모든 날의 어미로 왔다 / 등에 해를 업고, / 해 속에 삼백예순네 개 알을 품고 왔다 / 먼 곳을 걸었다고 / 몸을 풀고 싶다고 / 환하게 웃으며 왔다" (이영광 시인의 시 '1월 1일'에서 인용)

 

3년 넘게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벗어났지만 시민들은 고물가·고금리에 여전히 고단한 계묘년(癸卯年) 한 해를 보냈다. 안타까운 참사로 가족을 잃거나 깊어지는 갈등과 분열 속 아쉬움과 답답함을 느낀 이들도 있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다. 용의 해 중에서도 갑진년은 청룡, 즉 푸른 용의 기운이 가득한 해다. 용은 장엄한 외모와 물을 다스리는 능력 때문에 위대하고 신비로운 존재에 비유돼 왔다. 푸른 용의 기운을 담아 다시 희망과 설렘을 기원하는 새해 첫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 7명의 2023년 한 해 소회와 2024년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1일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공원 선유교에서 해맞이객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슬픔에 허우적대지 않고 나아갈 것"

25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청주 오송읍 지하차도 참사 유족 이모(45)씨는 "너무도 힘들고 괴로운 한 해였다"고 지난해를 회고했다.

치과의사였던 이씨의 남편은 작년 7월 15일 세종에서 출근하던 길에 변을 당했다. 이틀에 한 번은 꼭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던 효자였고 쌍둥이 대학생 딸과 초등학생 늦둥이 아들의 아버지였다.

참사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감리단장 한 명뿐이다. 이씨는 "분명한 인재(人災)임에도 인과관계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안했다"며 "남편의 죽음이 무의미하게 잊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이씨는 "막막할 때마다 다른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함께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에는 슬픔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려 합니다. 이제 중학생이 되는 막내도 잘 돌봐서 하늘에 있는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시부모님들의 건강이 염려되는데 하루빨리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23년 7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 앞에 추모객들이 놓고 간 국화가 놓여 있다. 강당 외벽에는 추모객들이 적은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16년째 교직에 몸담고 있는 서찬양 대구 세천초 교사(38)는 "난 서이초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2023년 7월 18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서이초 사건 이후 서 교사는 거리로 나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외쳤고 고인에 대한 재수사와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대국민 서명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현장 교사 정책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해 A4용지 300쪽 분량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을 비롯한 교사들을 '끓는 물 안에서 천천히 죽어가던 개구리'에 비유했다. 서 교사는 "돌 하나가 던져지니 그제야 개구리들이 놀라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며 "내가 좋아하고 긍지를 느끼는 일을 지키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동료들과 함께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곧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교사들은 정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고 서 교사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고 정상적 교육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아동복지법 개정 등이 선거 화두에 오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새해 소망은 더 이상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선생님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에요. 제 손으로 당장 뭔가를 크게 뜯어고칠 수 있는 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있는 현장에서라도 불합리한 일이 닥쳤을 때 '왜 그래야 하냐'고 맞설 겁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인근에서 두터운 옷차림의 시민들이 출근하는 모습.

◇ 고물가·고금리에 팍팍한 삶…"여유 있는 새해이길"

조미숙(63)씨는 서울 사당역 인근에서 13년째 홀로 작은 술집을 하며 두 자녀의 학업과 결혼을 뒷바라지했다.

젊은 시절 의류 판매업을 비롯한 다양한 가게를 오간 그는 특유의 넉살로 단골들과 정을 쌓다 보니 이 일이 여생의 업(業)이 됐다. 그런 그에게도 지난 몇 년의 코로나19 사태는 힘겨웠다.

조씨는 "작년에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코로나 이전보다는 매출이 많이 떨어져 힘에 부친다"며 "모임이나 술자리 문화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 같다. 이 주변 상권이 다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작년 들어 잔병치레가 잦았다는 조씨의 새해 소망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이다. 그러면서 최근 아들과 딸을 각각 결혼시키며 바라는 점이 하나 늘었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우리 때보다 힘들어서 안타까워요. 힘들게 취업해도 돈이 없어서 집도 못 구하고 결혼도 힘겹고…. 젊은 사람들이 살맛 나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직장인 강지수(53·가명)씨는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야간 아르바이트를 위해 편의점으로 출근하는 '투잡' 생활자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참아가며 계산과 상품 진열, 매장 청소 등을 해낸다.

강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1년여 전이다. 금리가 오르면서 집값 대출 상환금이 크게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평일 퇴근 후 3시간씩 건물 청소를 하며 '쓰리잡'을 뛰다가 지난여름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나면서 청소 일은 그만두었다. 당시 수면 시간은 하루 평균 서너 시간 정도였다.

강씨는 "직장에서는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고 생각할까 봐 동료들에게도 말을 못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한테는 알바한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말했다. 그는 "편의점 일은 쉽게 봤는데 막상 해보니 쉬운 일은 없더라"며 "처음엔 실수도 많이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제 좀 익숙해졌다"고 웃었다.

강씨의 새해 소망은 가족의 건강과 경제 안정이다. 강씨는 "아내가 작년에 수술하고 반려견도 10살이 넘어 잔병치레가 많을 때"라며 "무엇보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금리도 좀 내려서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건설현장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이지만…"매일 최선 다하고 행복하기를"

서울 은평구 수색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권용주(63)씨는 2년여간 인근 구역 재개발로 어려움을 겪다가 최근 숨통이 틔기 시작했다. 적자가 계속돼 대출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버티다 지난해 8월부터 재개발이 끝나고 입주민들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나아졌다며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회고했다.

스마트폰 상용화로 경쟁 업체들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수색동에는 권씨네 사진관 단 하나만 남았다. 권씨는 "경쟁자들은 사라졌지만 매출은 30년 전과 비교하면 5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며 "내년에는 모든 '사진인'이 다 영업도 잘되고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올해로 사진 인생 40년 차를 맞은 권씨의 고민은 빠르게 변하는 사진 기술이다. 그는 변화하는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오후 8시 사진관 문을 닫고 나면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새로운 사진·영상 기술을 독학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평교사에서 교감, 교장, 그리고 장학사까지 했다가 정년퇴임을 한 손님의 업적을 모두 담은 작품을 만들어 '주경야독' 생활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직업의 좋은 점은 늘 사람들의 예쁜 모습, 좋은 모습을 보고 산다는 거예요. 사진 찍으러 올 때는 다들 예쁘게 하고 오니까요. 이래저래 사진 시장이 죽어가고는 있지만 스튜디오 사진은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 자신해요. 우리만의 조명 노하우로, 빛을 가지고 사람을 예쁘게 표현해주는 건 AI(인공지능)도 못 하거든요.(웃음)"

서울 주요 관광지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문화재를 소개하는 관광통역안내사 배모(30)씨는 2023년을 "일하는 재미가 있었던 한 해"로 기억했다. 코로나19로 관광 산업이 멈춰선 지난 2021년 일을 그만뒀던 배씨는 작년 10월 다시 같은 일을 시작했다.

서울 경복궁 인근에서 한 관광객 여성이 아이에게 목도리를 매주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관광객이 없으니 일도 없고 무력감도 커 퇴사했는데 올가을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거리에서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는데 '진짜 코로나가 다 끝났구나' 싶어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코로나 기간 한국 드라마와 가요 등 소위 'K-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불면서 관광객들의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 잠시 들르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엔 한국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오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며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도도 이전보다 훨씬 높다"고 전했다.

지난해 큰 수술을 하면서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했다는 배씨는 "2024년에는 더 건강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요즘 뉴스를 보면 2030 세대는 결혼·육아·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포기하는 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래를 당연하게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15년째 서울에서 택시를 모는 장영진(72·가명)씨는 오전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꼬박 16시간을 운전한다. 코로나19 유행은 끝이 났지만 이전에 비해 회식이 많이 줄고 집에 일찍 들어가는 등 아예 생활 패턴이 바뀌어 야간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좁은 데서 하루 16시간씩 앉아 있으려면 힘이 드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살아남으려면 근무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매일 같이 여러 손님을 태우고 라디오를 들으며 분열되는 한국 사회를 체감한다. 장씨는 "사람들이 택시를 타면 '있는 놈' 운운하며 욕을 한다. 있는 놈·없는 놈, 배운 놈·못 배운 놈, 남자·여자. '너 죽기 아니면 나 죽기'로 서로 헐뜯고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으니 갑갑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지금껏 태운 승객 중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았다고 했다. 바라는 대로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쌀독에 돌이 많으면 쌀독이라고 하지 않아요. 돌독이라고 하지. 간혹가다 밥알에 돌처럼 한 사람이 마음을 아프게 하죠. 우리는 좋은 것보다 나쁜 걸 더 오래 기억하잖아요. 그렇지만 쌀알이 더 많아요. 따뜻하고 좋은 말을 해주시는 손님분들도 있고요.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아요. 그래서 살아볼 만한 세상이거든."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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