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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 속 책값 액수는 ‘묻지마’… 정치자금 창구로 여전히 건재 [심층기획-출판기념회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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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06 14:00:00 수정 : 2024-01-06 14: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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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이후 여야 60여명 행사 개최·계획
현행법상 수입·세금 신고 의무도 없어
억대 수익 정계정설… ‘쌈짓돈 모금’ 전락
의원들 “세 과시·유권자 만남 기회” 항변

일부 의원은 ‘뇌물수수 혐의’ 유죄 선고
보좌진 대필·외부작가 동원 집필도 허다
법 발의 등 자정 외치나 십수년째 공회전
선관위 “법 개정 논의 서둘러 진행돼야”
“저는 이름 알리기도 벅찬데 현역들의 출판기념회를 볼 때마다 힘이 빠집니다.” 오는 4월 총선에 도전장을 낸 한 청년 정치인은 최근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보며 이같이 한탄했다. 현역 의원들은 지역구 인사나 상임위 유관 기관이나 기업들이 출판기념회에 와 줄을 서서 책값을 내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정치 신인들에겐 이런 행사가 남의 집 잔치에 가깝다. 오는 10일까지 열 수 있는 법정 기한을 두고 1월에도 막바지 출판기념회가 연이어 개최되고 있다.

 

◆정치자금 모금 창구 전락한 현실

최근 현직 공무원의 출판기념회 개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총선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가 감찰을 받고 있는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는 출마 예정지인 창원 의창구에서 오는 6일 예정대로 출판기념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수원 출마를 준비 중인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오는 7일 출판기념회를 홍보해 현직 장관 신분에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방 장관 측은 “개별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한테만 보냈다”고 해명했다.

출판기념회에는 변변치 못한 작은 성의라는 뜻의 ‘미의(微意)’라고 쓴 봉투가 쏟아진다고 한다. 20년 경력의 국회 한 보좌진은 5일 통화에서 “그동안 여러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해봤지만 책 정가를 넣은 봉투는 거의 본 적이 없다”며 “일반 지지자들조차 응원의 의미로 오만원권을 넣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축의금 수준이나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넣는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선 현역 의원의 경우 출판기념회 한 번에 억대의 책값이 들어온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한 정치인은 “책값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들어와 나도 놀랐다”며 “지역에서는 내가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2019년 출판기념회 수익금이 7000만원 정도였다고 소명한 바 있다. 통상 현역 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열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수익이 남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규모는 해당 정치인과 최측근에게만 공유되기 때문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2022년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3억원가량의 뭉칫돈과 관련해 “2020년 출판기념회와 부친상 조의금”으로 들어온 돈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노 의원의 책(1만6200원)은 4000부가량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신학용 당시 의원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법안 발의 대가로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으로 336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출판기념회를 통한 책 판매 수익은 현행법상 아무런 신고·보고 의무가 없다 보니 축의금처럼 쌈짓돈 모금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세금 신고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 한 기업의 대관 담당 관계자는 “출판기념회 보도자료가 나오면 우리 쪽 의원인지 먼저 체크해 인사를 한다”며 “책은 사실 별다른 필요가 없다 보니 여러 권 값을 내고도 실제 한두 권만 받아온다”고 했다.

정치인의 책을 다수 출판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을 내기 전에 통상 몇 권이 팔릴지 서로 약속을 한다”며 “출판사 입장에서도 보장된 수익이다 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점이 아닌 출판기념회 행사장에서 팔면 책값은 사실 돈 내는 사람 마음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가 단순히 돈을 모으는 행사라기보다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유권자를 합법적으로 만나는 기회라고 항변한다. 최근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한 의원은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 모금 성격도 있겠지만 세몰이 효과도 있어 표 하나가 절실한 상황에서 이를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며 “지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치인의 정견을 듣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도 현실적 문제”라고 토로했다.

실제 2007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던 당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2만명의 넘는 인파가 몰렸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현역의원 60명이 참석했지만 최근 이런 대규모 출판기념회는 사라지는 추세다.

◆여의도에서도 외면받는 정치인의 책

출판기념회의 또 다른 문제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견을 알리기 위한 출판 대신 돈벌이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책의 질에는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한 초선 국회의원은 “전문가 출신의 특정 의원 책 두 권을 제외하곤 모두 버렸다”며 “출판기념회를 목적으로 나오는 정치인의 책은 여의도 사람들도 읽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도 책을 써보려는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21대 국회 전반기(2020년 6월∼2022년 5월) 국회도서관 대출 목록을 조사한 결과, 상위 10위권 내에 정치인이 쓴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출판기념회를 위한 책이 출간되다 보니 대필작가를 동원하거나 보좌진이 나눠서 책을 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비용이 발생하는데 최근에는 그간 자신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모아서 책을 내는 경우도 늘고 있다. 또 출판기념회를 북 콘서트 형식으로 대담을 여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민형배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최강욱 전 의원은 민 의원의 저서(탈당의 정치)와 무관한 ‘암컷’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뉴시스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민주당은 현역 의원 50여명이, 국민의힘은 10여명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했거나 행사를 예고했다. 여야가 이같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두고는 여당은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해 현역 의원의 출판기념회 개최를 자제해달라고 경고한 데 따른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선 공천을 앞둔 상황에서 지도부에게 책잡힐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후문이다.

◆십수년째 공회전, 21대 법안 발의 0건

출판기념회에 대한 비판은 그간 여러 차례 반복됐지만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19대와 20대 국회에서는 법 개정 논의라도 진행됐지만 이번 21대 국회 들어서는 법안 발의 자체가 실종됐다.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자들이 붐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4년 일부 의원들의 출판기념회를 이용한 뇌물수수가 논란이 되자 여야 모두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를 열면 관할 선관위에 신고하고, 정가 또는 통상적인 가격 이상으로 책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 의견이 나왔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전 대표는 “선출직 의원이나 로비 대상에 있는 고위공직자는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아야 한다”고 공개 발언을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25명은 책을 정가에 판매하고, 수입과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했지만 결국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8년에도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번 국회 들어서는 1만6000건이 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출판기념회 문제를 바꾸기 위한 법안은 단 1건도 없었다. 선관위 한 관계자는 현행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별도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며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각종 현안에 다양한 입법 의견을 내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최근 출간 자료현황에도 출판기념회에 관한 보고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 한 관계자는 “국회는 정치인이 수장을 맡다 보니 의원들을 겨냥한 자료를 쓰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의원들의 정치 후원금 모금 한도가 2004년 이후 선거가 있는 해 3억원, 그외에는 연간 1억5000만원으로 상한을 정한 뒤 20년간 오르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총선 경험이 많은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선거를 한 번 치르려면 지역구 관리와 선거를 도와줄 사람 등 많은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이 돈을 다 어디서 마련하겠느냐”며 “그나마 출판기념회는 오는 사람이라도 추산되고 서로 보는 눈이 있어 불법적인 면이 그나마 제어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병욱·김승환·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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