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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배차 거절하면 경고"…폭설·폭우에도 '위험한 배달'

입력 : 2024-01-03 19:00:00 수정 : 2024-01-03 19: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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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 배달 안전 대책촉구

“코앞에 보행자와 차가 많이 다니는 큰길이 있는데, 제발 멈추라고 빌었어요.”

 

위대한 라이더유니온 쿠팡이츠협의회장은 지난해 눈길에서 배달하다 아찔한 경험을 했다. 경사로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눈 쌓인 도로에서 오토바이가 50m가량 속절없이 미끄러졌다. 다행히 큰길 진입 전에 오토바이가 멈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위 협의회장은 “폭설에도 장거리 배차를 거절하면 회사에서 경고 문자를 보내고 심지어는 아예 추후 운행을 못 하게 하기도 한다”며 ‘위험한 배달’을 멈출 수 없는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의 배달 플랫폼 환경에선 악천후에도 사실상 장거리 배차를 거절할 수 없고,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아도 누구나 배달할 수 있어 배달 노동자가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달 노동자 안전을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이유다.

지난 2023년 12월 30일 한 30대 배달 노동자가 배달 중 눈길에 미끄러져 오토바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라이더유니온지부 제공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배달 노동자에게 안전교육 이수·유상보험 가입·이륜차 면허 소지 등 일정한 자격을 요구하는 ‘라이더자격제’와 배달대행업체에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령 준수 의무를 부여하는 ‘대행사등록제’를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들에 따르면 배달업에 입직할 때는 산업안전보건교육 이수 의무가 있지만 온라인으로 갈음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이수 여부도 관리되지 않아, 사실상 아무나 라이더가 될 수 있다. 또 지역별 배달대행업체 가운데 산재 보험료를 불법 징수하는 등 최소한의 법조차 지키지 않는 업체들이 많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배달업종 산재보험 승인 사건 절반 이상(63.5%)이 입직 6개월 이하인 경우였다. 이러한 경우가 2021년에는 84.6%에 달했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라이더자격제’가 모두에게 이롭다고 강조했다. 구 지부장은 “일부 교통법규를 준수하지 않는 라이더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있는데 그래서 자격제가 필요한 것”이라며 “누구나 라이더가 될 수 있는 현행 체계에선 자격 없는 라이더 본인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들이 헬멧과 라이더 조끼를 착용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윤준호 기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라이더자격제와 대행사등록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밝힌 바 있다. 국토부는 해당 답변서에서 “안전교육 콘텐츠 제작 및 전문교육기관 지정, 교육 이수 인센티브 마련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플랫폼 노동자인 배달 노동자에 대한 자격제 도입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또한 대행사등록제와 관련해서는 “등록제가 도입될 경우 사업자에게 시장장벽으로 작용해 관련 산업 발전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구 지부장은 이에 대해 “이미 배달시장은 포화상태라 신규사업자가 들어오면 서로 ‘제살깎아먹기’밖에 안 된다”며 “진정 산업 발전을 위한다면 노동 환경의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건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행사등록제는 일종의 규제이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대행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다”며 “이것이 있어야 배달 노동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방향성에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배달 노동자 5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라이더 실태조사'를 보면 열악한 노동 환경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계약서를 작성해 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40.3%, 운전면허증조차 확인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8.6%에 달했다. 또 응답자의 60%는 산재 신청을 해보지 않았거나 산재 신청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답하기도 했다.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교현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이 ‘배달라이더 종합안전대책안’을 경찰에게 제출하고 있다. 경찰은 해당 의견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준호 기자

한편 라이더유니온지부 측은 기상악화에 대한 안전대책과 산재·고용 보험 등 사회적 안전망 강화도 요구했다. 특히 겨울철 한파와 폭설, 여름철 폭염과 폭우 등의 상황에서 기상할증, 거리제한, 주문중단 등의 조치와 함께 사고 시 사측에 적극적인 책임을 묻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산재보험에 대해서는 휴업급여가 통상적인 근로자에 비해 현저히 낮아 최저임금에 미달하고 휴업급여 산정 시 소득이 없던 산재 기간을 제외하는 통상적인 근로자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용보험의 경우도 사실상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육아휴직·출산휴가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배달 노동자가 직장가입자가 아닌 지역가입자로 분류돼 2배 이상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오민규 플랫폼 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정부가 150만명에 육박하는 플랫폼과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변변한 행정통계 하나 내지 않고 있다”며 “이들은 처음부터 분석에서 배제된다”고 말했다. 이어 “실업급여 수급률과 산재 규모 및 산재 휴업급여 지급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꼼꼼히 따지고 예측해 보험기금을 운영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런 기본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라이더유니온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종합대책안을 대통령실에 제출했다.


윤준호·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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