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은 혹독한 겨울날 추위를 어떻게 녹였을까. 한국국학진흥원은 ‘뜨끈뜨끈 온돌의 맛’을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 1월호를 발행했다. 선조들이 온돌을 통해 어떻게 추위를 견뎌냈는지 고서적을 분석해 설명한다.
◆“양반이 온돌 깔자…청계천 범람”
‘구들을 덥히자 청계천이 범람했다’에서 김소라 경인교대 교수는 17세기 조선 왕의 침소에서부터 온돌이 깔리면서 달라지는 조선의 풍경을 담았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추운 기후가 이어지던 소빙기였다.
조선은 현종대의 경신대기근(1670~1671)과 숙종대의 을병대기근(1695~1696)의 백성들은 황충과 냉해,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를 겪었다.
당시 주거환경은 온돌과 유사한 난방이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됐으나 따뜻한 바닥의 좌식 생활은 줄곧 하층민의 생활양식으로 여겨졌다. 상류층은 최소 조선 전기까지 입식 생활을 이어왔고 난방은 화로 등을 활용했다.
조선에서 가장 뒤늦게 온돌을 일상화하게 된 공간은 궁궐이었다. 소빙기의 여파로 인조대에 궐내 온돌 증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궁궐에도 온돌이 설치된다.
온돌 사용이 늘면서 땔감이 필요해졌고 점차 산림은 헐벗게 됐다. 인구가 집중된 한성부는 ‘땔감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스펀지’와 다름이 없었다. 한성부를 에워싼 산들은 점차 훼손됐고, 홍수가 빈번히 발생했다. 강수량이 많은 날이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구조인 인공으로 만든 청계천은 자연 배수가 어려워 도성은 물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ㅁ자집’의 온돌방 확장은?
‘조선 시대 ㅁ자집 온돌방의 확장과 건축 계획’에서 박진기 연구원은 전통 목조건축에서 온돌방의 설치가 고려해야 했던 다양한 부분을 전한다. 온돌을 만들려면 위치나 크기에 따라 온돌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특성들이 평면부터 구조 계획에까지 영향을 준다. ‘ㅁ자집’에서 맞배지붕을 사용하는 형태의 경우 각 채의 도리(지붕을 구성하는 주요 구조재)들이 층을 두고 연결되는데 대부분 경사지에 지어진 경우가 많다.
팔작지붕을 기본으로 하는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재의 종류와 수량이 적고, 구조가 간략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이 유형의 집 대부분은 모서리 방이 확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온돌 구조의 확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지형과 지붕 구조와 결합해 많은 고민을 거듭하게 되고, 익사채의 중층 공간 활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박 연구원은 “관광하듯 지나쳤던 옛집들을 당시 장인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하나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거쳤던 많은 고민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서적 속 온돌 이야기
웹진 담에서는 온돌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독 선생전’으로 연재되는 스토리웹툰 1화 ‘묵적만 못한 신세’에서는 쇄미록과 노상추일기 속 온돌 이야기를 웹툰으로 선보인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홍승지 자녀의 가정교사로 있는 묵적골 독선생이 추운 겨울날 제자의 뜨끈한 온돌방과는 달리 온기 하나 없는 방에서 버티지 못하고 절절 끓는 방에서 보낼 수 있는 잔꾀를 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구들장 밑에 사는 양수지조’에서는 구들에 사는 ‘불돌이’, ‘양수지조’를 만난 ‘목금’이와 ‘백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이 땔감이 부족해 삭정이라도 줍기 위해 산을 올랐다가 산불을 일으키는 양수지조를 만나게 되고, 불돌이로 이름 붙여 꼭 안아 집으로 돌아오자 불돌이가 아궁이에 숨어드는 이야기다. 웹진 담은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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