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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1945년 9월 소련 군함을 타고 북한 원산항에 발을 디뎠을 때 그의 계급은 소련군 88특별저격여단 대위였다. 하지만 북한은 그를 ‘백마 탄 장군’이라 부르며 백두산과 만주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이후 장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만 붙일 수 있는 금기 호칭이었다. 그래서 진짜 군 장군은 장성 또는 장령이라 부른다.

김정일은 33세의 나이에 ‘당중앙’,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6세의 나이에 ‘청년대장’으로 호칭을 알리면서 후계자의 지위를 공식화했다. 김정은의 딸 주애는 아홉 살이던 2022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7형’ 발사 때 김정은의 손을 잡고 공식 석상에 처음 등장했다. 호칭이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시작해 ‘제일로 사랑하는∼’, ‘존귀하신∼’ ‘존경하는 ∼’으로 격상되더니 지난해 11월 ‘조선의 샛별 여장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조선의 샛별’은 김일성 초기 활동을 선전할 때 사용됐고 김정은도 ‘샛별 장군’으로 불렸다.

김주애 우상화 작업도 속도가 붙고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주애가 한 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이며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를 보좌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과거 “축지법을 써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넌다”(김일성), “축시법을 써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김정일), “세 살 때 자동차를 운전하고 총을 쏴서 백발백중 다 명중시켰다”(김정은)는 황당한 설화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어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현재로서는 김주애가 유력한 후계자로 보인다”고 했다. 정보 당국이 이런 판단을 밝힌 건 처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절대군주체제나 가족독재체제 등으로 권력을 세습한 국가는 27곳인데 이 중 3세대에 걸쳐 권력 이양을 성공한 사례는 북한이 유일하다. 이도 모자라 통치권을 4대까지 대물림하겠다니 기가 찬다. 북한이 아무리 통제사회라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4대 세습으로 가는 길이 순탄할 리 만무하다.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 권력 세습은 한반도 안보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그래서 참담하고 걱정도 크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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