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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10억 명을 위한 소외질병 연구 지원, 한국이 필요하다

입력 : 2024-01-30 15:55:03 수정 : 2024-01-30 15: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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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질환신약개발재단(DNDi, DNDi – Best science for the most neglected) 루이스 피자로 박사, DNDi 대표이사 / DNDi는 20년 전 국경없는 의사회, 파스퇴르 연구소 및 국제보건기구(WHO)에 의해 설립된 국제단체로, 전 세계 8개국에 사무소와 200개의 파트너사를 두고 있으며 설립 이후 지금까지 13개의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했다.
/ 사진 출처 : Ariane Mawaffo-DNDi

 

1월 30일은 세계소외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s∙NTD)의 날이다. 소외열대질환은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아직도 관심과 투자는 부족하다. 세계소외열대질환의 날은 이 질병들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지금까지 일궈낸 성과를 널리 알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을 독려하고자 만들어졌다.

 

소외열대질환이란 명칭 탓에 이 분야가 한국과는 다소 멀게 보일 수 있지만, 한국은 소외열대질환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이끄는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세계소외열대질환의 날을 맞아 국제 보건에서 한국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한다.

 

소외열대질환은 열대 지방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병들을 일컫는 말로, 리슈만편모충증, 회선사상충증, 진균종, 수면병 등 WHO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소외열대질환은 현재까지 21가지이다.

 

콩고에서 환자를 검진하는 모습 / 사진 출처 : Ley Uwera-DNDi

 

이 중 일부 질환은 매우 치명적인데, 감염 후 수년 동안 특별한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심장부전을 유발하는 샤가스병이 대표적이다. 리슈만편모충증과 같은 질환은 얼굴에 흉터를 남겨, 환자들의 사회적 낙인과 소외를 유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인해 뎅기열 같은 소외열대질환이 지구 곳곳으로 퍼지는 양상도 나타난다.

 

소외열대질환의 가장 큰 공통점은 가장 빈곤한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고, 빈곤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비말이라는 인도의 한 환자는 HIV와 내장리슈만편모충증을 동시에 앓았다. 이 때문에 그는 일할 수 없었고, 그의 가족은 궁핍에 시달렸다. 결국 14살의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소외열대질환 치료제는 소외 계층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일부 질환들은 아예 치료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업적 인센티브가 부족한 탓에 제약업계가 치료제 개발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험과 역량은 소외열대질환을 둘러싼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이 수십 년 전 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말라리아, 결핵, 기생충 질환 등 여러 감염성 및 기생충 질환을 보거나 겪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질환들을 퇴치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약 산업과 연구의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이제는 소외열대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을 이끄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국에서 현재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곳이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RIGHT Foundation; 라이트재단)’이다. 2018년 한국 정부와 민간의 공동 출자로 설립된 이 재단은 결핵, 말라리아 및 여러 소외열대질환에 대한 치료제 및 진단기기와 백신 개발 연구를 지원하며, 이런 연구 결과물을 필수 의료 공공재로 개발해 이 기술이 필요한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보급하는 것이 목표이다.

 

라이트재단은 국제기구 및 단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의 과학 전문성을 활용하여 오랫동안 소외되어 온 질환의 퇴치 및 예방법을 연구 개발해 왔다. 라이트재단의 혁신적인 협력 방법은 소외열대질환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을 제시한다. 2022년 노벨 평화상 후보였던 과학자 피터 호테즈는 “라이트재단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롤모델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소외질환신약개발재단 또한 라이트재단의 지원으로 코오롱생명과학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고 이를 통해 혁신적인 제조 과정을 이용하여 회선사상충증 치료제를 위한 저렴한 원료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회선사상충증은 심한 가려움을 일으키며, 최악의 경우 실명을 일으키는 기생충 질환으로, 중앙 및 서부 아프리카에서 풍토병으로 널리 퍼져 있어 현재 1,900만 명의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소외질환신약개발재단은 수년 전 한국 파스퇴르연구소와도 의미 있는 협력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에서는 고속 대량 스크리닝 기술을 이용하여 수백만 개의 분자를 소외열대질환 병원체에 대해 검사하고 잠재적인 치료법을 찾았다. 여기서 발견된 유망한 후보 물질들은 현재 임상 개발 단계에 있다.

 

이러한 한국의 연구 협력 사례들은 한국의 국제 보건 형평성에 대한 노력뿐만 아니라, 실제로 과학 기술의 발달이 어떤 성취를 거둘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소외열대질환의 날을 맞아, 우리는 지금까지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소외열대질환으로 고통받는 국가에서 해당 분야의 선두 주자로 탈바꿈한 한국의 놀라운 성장은 다른 국가들에 영감을 준다. 이는 과학의 발전이 공공보건의 변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즉, 한국의 리더십은 국제 보건 무대에서 매우 중요하다. 소외열대질환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한국이 좀 더 많은 지지를 보여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목소리는 다른 국가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소외열대질환 해결을 위한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끌어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한국은 2024년 ODA에 관련된 예산 증액 결정을 발표했다. 많은 국가가 ODA 예산을 줄이는 추세 속에서 주목할 만한 결정이다. 세계적으로 이 예산이 소외열대질환 연구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인들이 소외열대질환이 없는 세상을 함께 꿈꾸며, 실제 국제 연대를 이끌어 내어 수많은 소외열대질환이 근절될 수 있길 기대한다.


DNDi 대표 루이스 피자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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