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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방패연 원형 보존·발전… “다시 태어나도 연 날릴 것”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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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30 22:00:00 수정 : 2024-01-30 21: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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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연과 함께 살아온 ‘연인(鳶人)’
조부·부친 잇고 4대 딸·조카 전승 준비
1974년 초양법으로 연 쉬운 제작법 개발
전통 계승 넘어서 쉽게 띄울 개량형 보급

‘우리의 것’ 방패연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중앙에 구멍 뚫은 연
바람 세기 조절… 좌우상하로 조종이 용이
英 소장 조선 最古 방패연, 원형복원 활약

우리 연 우수성 세계에 널리 알리다
카타르 등 연날리기 행사에 연·얼레 기증
태국 공주에게 방패연 선물 ‘민간외교’ 일조
베이징 국제 연축제서 2년 연속 대상 수상

글로벌 누비는 리기태 창작연
삼족오연·1.2㎞ 봉황줄연 등 세계에 날려
伊 명품 브랜드가 뽑은 우수한 장인 공방
‘보테가 포 보테가스’에 한국 최초 선정

초양 리기태 명장의 바람은
세계 놀이문화 연 날리기, 한국선 사라져가
시대 흐름 바뀐 탓인지… 요즘은 드론 띄워
연·드론 함께 떠올라 신·구 소통의 장 기대

淸風鳶飛白雲戱(청풍연비백운희) 맑은 바람에 연이 날아 흰 구름에서 놀고/ 惟心神仙同席遊(유심신선동석유) 내 마음 속뜻은 신선과 함께 어울리는구나.

“연을 날리는 사람은 곧 신선입니다. 땅 위에 두 발로 선 사람이 연을 띄워 하늘로부터 신성한 기운을 내려받습니다. 송액영복(送厄迎福). 액을 날려 보내고 복을 맞이하는 거죠. 예로부터 정월대보름날이면 연에 ‘送厄(송액)’이라 적어 띄우고, 하늘과 맞닿은 연을 바라보며 가족의 무병장수와 번영을 기원했어요.”

서울 무교동에서 태어난 리기태(74) 명장은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자다. 조부인 1대 스승 이천석, 부친인 2대 스승 가산 이용안에 이어 3대째로 원형을 보존·유지·발전시키며 평생을 연과 함께 살아온 ‘연인(鳶人)’이다. 4대째를 이을 두 딸 이수영·이진영과 조카 이호준 등에게 정통 제작법을 전승하며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리스와 중국, 인도 등 연을 즐기는 나라에서는 높이 날리는 것과 함께 연의 모양 또한 중시했다. 그만큼 연의 형태는 다양하다. 하지만 중앙에 구멍을 뚫은 연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방패연의 방구멍이다. 모든 연은 바람, ‘공기의 저항’을 원동력으로 삼지만 바람이 너무 셀 때는 그 저항을 이기지 못한다.

“방구멍이 조절해 냅니다. 바람이 약할 때는 연 표면에 모인 공기가 이 방구멍을 통과하면서 상승 에너지를 발생시켜 연이 올라가게 하고, 바람이 강할 때는 이곳으로 남는 바람을 내보내 저항을 줄여 줄이 끊어지지 않고 오래 날도록 하는 겁니다. 게다가 좌우상하로 조종이 용이하게 하는 구실도 합니다. 조상님들의 기술이 참 놀랍죠? 하하.”

서울시가 운영하는 북촌문화센터 공공한옥에서 만난 리기태 한국연협회 회장은 “정월대보름날 연을 띄워 액을 날려 보내고 복을 맞는다”면서 “드론과 전통 연을 함께 띄워 신·구 세대 소통의 장을 푸른 하늘에 열자”고 제안한다. 이재문 기자

전통 민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방패연은 일제강점기, 조선 독립의 희망을 담아 하늘을 날던 전통 유산이다. 그의 두 스승은 맬가방에 연을 숨겨 산과 들로 나다니며 하늘 높이 연을 띄웠다. 이는 일제에 대한 항거로, 언젠가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연이 날면 어김없이 일본 순사들이 잡으러 왔다. 그들은 쫓기면서도 연에 항일의 글을 쓰거나 방패연에 전단을 매달아 뿌리기도 했다.

 

조선의용대 총대장 약산 김원봉 선생은 그의 조부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전단을 널리 살포할 수 있는 대형 방패연 만드는 방법을 세밀히 배워갔다. 중국과 만주에서 펼쳐진 일제에 대한 조선의용대의 대적선전, 적진교란 활약에 기여한 셈이다.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항일 투쟁 의지의 피를 받은 그는 우리 것을 찾거나 복원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다. 영국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이 소장한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표준 방패연 ‘서울연’을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제2대 주한 영국영사 토머스 워터스(1840~1901)가 귀국할 때 선물로 받은, 1888년에 만들어진 연으로 훼손 상태가 심했다. 영국 런던예술대학교 캠버웰 예술대학으로부터 자문의뢰를 받은 그는 2011년 6월 가로 276㎜, 세로 343㎜ 방패연의 당당한 제 모습을 되찾아 주었다.

한국연협회 회장인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우리 연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왔다.

2014년 한국·카타르 수교 40주년 기념 연날리기 행사에서 그의 방패연과 얼레는 도하 이슬람 박물관에 영구 기증되었다. 당시 ‘걸프 타임스’, ‘카타르 트리뷴’, ‘페닌슐라’ 등 카타르 3대 일간지가 1면 뉴스로 이를 다뤘다.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 방송도 그를 인터뷰해 ‘장인 리기태’란 제목을 붙여 내보냈다.

리기태 한국연협회 회장/2024.01.26/이재문 기자

같은 해, 소치 동계올림픽 땐 그가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방패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7년엔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그의 방패연과 나무육각얼레를 영구 전시물로 지정했다. 제9회 태국 국제연날리기축제 때 그는 마하 차크리 시린드혼 공주를 알현하고 방패연을 증정하는 등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며 민간외교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국제연축제에서는 2017년과 2018년 연이어 대상(大賞)을 차지하고 챔피언에 올랐다. 창작성, 예술성, 과학성 전부문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그동안 그가 선보인 창작연 또한 놀랍다. 형태와 규모에서 세계무대를 압도한다. 태양 안에 산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를 연으로 올려 하늘을 온통 상서로운 기운으로 채웠는가 하면 긴꼬리원숭이연, 천하대장군연, 태극기연, 그리고 무려 1.2㎞에 이르는 수백 개의 봉황줄연을 띄우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노력과 활동을 묵묵히 지켜보아 온 곳이 있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다.

보테가 베네타는 리기태 명장의 전통 방패연 공방을 지난해 ‘보테가 포 보테가스(BOTTEGA FOR BOTTEGAS)’에 선정했다. ‘보테가(Bottega)’는 이탈리아어로 ‘우수한 장인정신과 창의성을 우선하며 수공예품을 만드는 소규모 공방’을 말한다. 보테가 포 보테가스의 목표는 전 세계에 있는 소규모 장인공방을 조명하는 것이다. 한국 공방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보테가 베네타 측은 ‘방패연’에 대해 “한지와 대나무로 만든 한국 전통연”이라고 설명하면서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19세기 전통연 수공 제작 방식을 보존하는 공방으로, 리기태 명장은 연 제작 교육을 진행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해 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통을 보존하는 장인의 위대함뿐만 아니라 그 대를 이으려는 노력도 함께 소개했다.

황금찬 시인은 그에게 ‘초양’이란 호를 지어주었다. 대나무로 대양을 다스린다는 의미다. 초양 리기태는 방패연의 대중화를 꾀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초양법’이라는 방식으로, 무려 50년 전인 1974년 만들기 쉬운 방패연을 개발했다. 전통을 계승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초등학생도 혼자 만들어 띄울 수 있도록 개량형을 내놓은 것이다.

“조선 영조 때 정월대보름이면 한양의 광교와 수표교, 청계천 등지에서 전국 연꾼들이 시합을 벌였는데, 영조가 이를 친히 구경하며 장려했어요. 이때 이미 연날리기가 대중화된 것이죠. 이제 연날리기는 세계 곳곳에서 즐기는 놀이문화가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서는 사라져 가고 있네요.”

그는 보름 전 인도 아마다바드에서 열린 ‘제33회 인도 구자라트국제연축제 및 연날리기대회’에 다녀왔다.

 

“125개 나라 350여 명의 선수가 하늘 가득 띄워 올린 각양각색 연들이 아직도 눈에 밟힙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연 대신 드론을 띄워요. 시대의 흐름과 변화 탓이죠. 하지만 드론과 전통 연이 함께 떠올라 하늘을 메운 장관을 상상해 봅니다. 그러면 신·구 소통의 장이 파란 하늘에서 열립니다. 하하하.”

초등학교에 방패연 특별활동을 보급하고 싶다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연을 날릴 것”이라고 말한다.

리기태 한국연협회 회장/2024.01.26/이재문 기자
리기태는… ●1950년 서울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조선시대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 장인 ●한국연협회 회장 ●리기태연보존회 회장 ●서울시전통문화대전 운영위원장 ●영국 왕립식물원 소장 ‘서울연’ 원형 복원 ●KBS ‘한국의 유산’ 총 48회 진행 ●중국 베이징국제연축제 대상, 챔피언(2017, 2018) ●그리스, 인도, 카타르, 미국, 싱가포르, 러시아, 체코, 태국 등 국제연축제 한국대표단 단장 및 대표 ●성균관대 총동창회 부회장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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