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당선 땐 ‘보호무역주의’ 강화
화석 사용 늘리면 韓 태양광사업 수요↓
철강기업 연례 재심선 반덤핑 등 우려
수입 자동차에도 ‘관세폭탄’ 부여 예고
누가 당선되든 中 첨단 공급망 배제 심화
고율 관세 적용 땐 글로벌 침체 리스크↑
불확실성 맞물려 국내 수출·투자 악영향
“반도체 등 적극투자 … 美 견제능력 키워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백악관에 재입성할 경우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 강화 등으로 한국 산업계에 만만찮은 후폭풍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와 관련된 현지 투자에 적극 나선 한국의 이차전지(배터리)와 태양광패널 등 에너지업계에 직격탄이 우려된다. 반도체와 전기차 등 한국의 주력 대미 수출 산업 피해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가속화는 중국의 경제 회복을 늦춰 한국 기업의 대중(對中) 수출 감소 등의 피해를 안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산업계에선 변화 가능한 한·미 교역·통상 시나리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첨단 반도체 등 한국이 상대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세제 지원 등을 통해 대미 견제 능력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IRA 폐기는 못 하겠지만…’
14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IRA 폐기까지 언급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행태다. 이에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IRA 발효 후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 기업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에 공장을 가동하거나 짓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조 바이든 정부에서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등을 약속받은 마당에 정부가 바뀌면서 보조금 정책이 뒤집힐 것을 염려하고 있다.
미국은 IRA에 따라 미 현지에서 생산·판매하는 전기차 배터리 셀(전지)은 ㎾h(킬로와트시)당 35달러, 모듈(팩)은 ㎾h당 10달러, 태양광 셀과 모듈은 W(와트)당 각각 4센트와 7센트씩을 주거나 세금을 줄여주고 있다. 우리 기업 입장에선 연간 작게는 수천억원에서 수조원가량의 혜택이 기대되는 조치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특히 IRA 요건을 채우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에 수조원대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태양광 사업을 주도하는 한화솔루션도 북미 최대 규모 태양광 모듈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IRA 법안이 실제 폐기될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화석연료 사용 확대 등으로 재생에너지 수요가 위축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IRA 법안이 민주·공화당이 초당적으로 합의했고 최근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IRA 대체 법안’에도 AMPC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데다, IRA 법안 수정을 위해선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해야 하기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IRA 법안 수혜지역이 조지아, 텍사스주 등 공화당 우세지역이 많아 일자리 창출 효과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법안 폐지를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IRA의 경우 의회 구성상 폐지는 어렵고 행정명령으로 가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도 “IRA 수혜지역이 대부분 공화당 텃밭이라 쉽게 건드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반도체와 철강업계도 ‘트럼프 리스크’를 걱정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등에 대한 골자는 유지하되 세부사항만 바꿀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반도체 보조금에 대해 다른 말을 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 국내 기업들을 괴롭힌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것을 염려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면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는 것을 막겠다”고 공언하면서 “내가 재임하는 동안 철강산업을 구했다”고 했다. 실제 철강 수입 규제 등 조치로 미 철강사 매출은 트럼프 재임 당시 대폭 개선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 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반덤핑(AD), 상계관세(CVD) 등 연례 재심에서 국내 기업에 불합리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고, 무역확장법 232조 개정 등으로 수출 쿼터양을 줄이거나 없애 국내 기업에 타격이 클 수 있다”며 “전반적으로 국내 기업의 대미 무역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 멕시코 등에서 들어오는 수입 자동차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강력한 보호무역조치를 예고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대폭 증가한 대미 무역흑자가 트럼프 리스크를 더 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는 2022년 433억달러(약 57조6000억원)에서 2023년 514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트럼프 1기 첫해인 2017년(229억달러)에 비해 2.5배 수준이다.
◆“바이든도 트럼프도 대중 공세 강화”
이번 미 대선 이후 대중 공세 강화로 중국의 경제 회복이 늦춰지고 글로벌 경기도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블룸버그통신은 4년 만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리턴 매치’가 될 가능성과 관련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중국이 패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현직 대통령 모두 중국 때리기를 강화하겠지만 “대선에서 승리하면 중국에 6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최근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2018년과 2019년 중국산 제품에 수십억달러(수조원) 규모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런 기조가 강화될 수 있어서다. 산업연구원도 이날 펴낸 ‘미국 대중 경제 제재 진화에 따른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 전략 분야에 초점이 맞춰진 미국의 대중 견제가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확대·강화될 것이라고 봤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당선 시 관세를 통해 첫 번째 임기보다 더 높은 강도의 자국 보호무역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바이든 정부가 국가안보를 강조하며 중국 군사력을 억제하는 첨단 분야 조치를 내놓고, 중국산 자재 수급 등의 위험 완화(디리스킹) 전략을 편 것과는 일부 차별화된다”고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4년 전과 상황이 달라진 것은 미국이 중국시장에 더 강경해졌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주 실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글로벌 교역이 더 침체될 여지가 있다”며 “중국에 고율 관세를 적용하면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도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때 대중국 정책이 더 강경해지면서 수출 경기가 생각만큼 빨리 회복되지 못할 수 있고, 지정학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도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통상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핵심 사업별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지만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자국 중심주의라는 미국의 큰 벽은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대선 전에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으면 새 정부 초기에 금리 인하나 경기부양책 활성화가 힘들어져 미국 기업들의 투자위축이 지속될 것이고 우리 기업의 수출 및 현지 투자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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