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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 ‘길막’ 차량 밀어버리라더니… “민형사상 문제 땐 개인 책임”

입력 : 2024-03-11 19:30:00 수정 : 2024-03-11 22: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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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해진 소방기본법… 견인 등 강제처분 6년간 단 4번

제천화재 참사 이후 법 개정 불구
2021년 1건… 2023년엔 2건 그쳐
강제처분 훈련, 수천 회 실시 무색

현장 대원들 민원 우려 처분 주저
“민형사상 문제 발생 땐 개인 책임”
“개정안 실효성 떨어져” 목소리도

소방차의 화재 현장 진입을 막는 차량을 견인하거나 제거할 수 있도록 2018년 3월 소방기본법이 개정됐지만, 6년 지난 현재까지 실제 강제처분이 이뤄진 사례는 단 4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주가 민원을 제기하거나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경우 소방관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을 우려해 적용을 꺼리는 것이다. 현장에선 “개정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1일 오전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주택가. 이곳은 주로 인근 대학교 재학생들이 거주하는 오피스텔과 연립주택이 모여 있는 곳이다. 건물 간격이 좁아 원래도 좁았던 골목길은 양쪽 갓길에 주차된 차들로 더욱 좁게 느껴졌다. 이 길을 폭 2.5m의 소방차가 지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소속 소방관들이 소방활동 방해 주차차량 '강제처분' 훈련을 하며 통행로를 막은 불법 주차차량을 소방차로 파손하며 출동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화전 이용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날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이 거리에 있는 소화전(지하식 포함) 21개 중 절반이 넘는 11개가 차량이나 전동 스쿠터, 가게 간판 등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소방에서 소방용수시설 주변에 세워진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한 경우는 1만8701건에 달한다. 2022년(1만3622건), 2021년(1만1731건)에서 꾸준히 늘어난 수치다.

 

원칙적으로 이같이 진입로 또는 소방시설을 가로막고 있는 차들은 화재 발생 시 소방차가 밀어버린 뒤 지나갈 수 있다. 화마로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친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에서 골목길 주·정차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를 계기로 소방 활동을 방해하는 차량을 ‘강제처분’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강제처분을 실제로 실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소방교 김모(37)씨는 “소방차가 다른 차를 살짝 긁기만 해도 3, 4번은 불려 다녀야 한다”며 “강제처분으로 차를 밀어버리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근무하는 소방교 A씨 역시 “실질적으로 유명무실한 제도”라며 “현장에서 (강제처분 사용)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고, 견인 과정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오롯이 내 책임이 되는데 누가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본부 차원에서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것은 알지만 크게 의지가 되지 않는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2018년 3월 소방기본법 개정 이후 이 법에 따른 강제처분 사례는 4건에 그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마저도 첫 사례는 2021년이 돼서야 나왔고, 2022년에 1건, 2023년에 2건 발생했다.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 훈련을 2022년에 4095회, 2023년 5346회나 실시했음에도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방기본법상 강제처분이 허용됐더라도 소방관들은 여전히 배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개정된 법도 주·정차된 차량 등을 옮기다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시·도에서 손실을 책임지게 돼 있다. 차량이 처음부터 불법 주차된 경우 배상 책임은 면제되지만, 차선이 없는 골목길의 경우 불법 주차 여부를 증명하기 쉽지 않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열린 소방활동 방해 불법 주정차 차량 강제처분 훈련에서 강동소방서 소방대원들이 불법 주차된 차량을 소방차를 이용해 견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동욱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사무처장은 “누구나 통상적으로 골목길에 주차를 하는데, (골목길에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소방차가 이를 밀고 들어간다고 하면 시민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며 “강제처분은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다”고 짚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의 단속 강화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주차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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