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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갈아넣기’ 수십년 묵인했다가… 수백억 적자 ‘부메랑’ [심층기획-의료대란 한 달]

입력 : 2024-03-18 18:30:00 수정 : 2024-03-18 23: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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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전공의 의존 '위기의 빅5'

‘빅5’ 의사 10명 중 4명꼴 전공의
주평균 78시간 일해 ‘가성비’ 높아
전공의 집단이탈 하루 10억대 손실
“서울대병원 마통 1000억으로 늘려”

정부 “전문의 채용 유도 규정 마련”
전문가들은 비용 분담 논의 목소리
“환자 돈 더내고 의사도 수익 낮춰야”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 1만1900여명이 집단 사직한 지 한 달째인 18일 서울의 ‘빅5’ 병원은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한 채 멈춰 서 있었다. 전공의 사태 전 환자들로 북새통이던 한 병원은 환자가 꽤 줄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외래접수 창구에 환자가 있었지만 예약이 9월 이후로 잡히는 등 수술과 진료 대기 시간도 길었다.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교수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앞서 의과대학 교수들은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연합뉴스

전체 전공의의 21%인 2745명이 근무했던 ‘빅5’ 병원들은 전공의 사태 한 달 만에 수백억원씩의 적자를 쌓아 가며 명성을 잃어 가고 있다. 수련의 신분인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은 ‘빅5’ 등 국내 대형병원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근무 환경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빅5’의 이유 있는 추락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 의사는 7042명이고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는 2745명(39%)이다. 서울대병원은 의사 1603명 중 전공의가 740명(46.2%)으로 절반에 가깝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의 경우 전공의 비율이 1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차이가 크다. 전문의 인건비가 전공의의 3∼4배에 달하자 ‘빅5’ 병원은 전공의 숫자를 늘려 왔다. 2020년 기준 인턴과 레지던트 연봉은 각각 6882만원, 7280만원으로 전문의(2억3690만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전공의 업무는 환자 진료기록부 관리나 일부 처치, 시술, 수술 준비 및 보조, 야간 당직 등이다. ‘빅5’ 병원들은 전공의 집단이탈 후 하루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다. 전공의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대병원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마이너스통장’ 규모를 1000억원으로 두 배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외래·입원·수술이 모두 줄었기 때문에 하루 손실이 10억원은 넘는다”고 했다. 인건비가 대다수인 병원 운영에 가성비가 좋은 전공의 위주로 의료시스템을 구성해 오다가 이번 사태로 ‘철퇴’를 맞은 셈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빅5’ 병원장들이 이날 만난 자리에서 다양한 지원 대책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빅5’ 병원장들은 “의료진의 체력 소진이 커 진료 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고, 조 장관은 “복지부와 병원에 근무하는 젊은 의사들이 직접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외면된 ‘전공의 처우 개선’ 급선무

 

의대 증원 방침이 ‘트리거’가 됐지만 선배 등에 의해 수십년간 묵인된 열악한 처우는 불씨 역할을 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36시간 연속 근무’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을 한다. 전공의는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당직을 서고, 저녁까지 정규 근무한 뒤에 집에 간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병원들이 인건비 문제로 의사가 아닌 전공의를 ‘갈아 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진료센터에서 나온 환자가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의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 왔다. 대전협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주평균 근로시간은 77.7시간이다. 100시간 이상 근무자도 25%나 됐다. 2015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로 전공의 근로시간이 주당 100시간에서 80시간으로 줄었지만, 현장에선 외면됐다. 보상도 작았다. 이렇게 일하고 월평균 397만9000원을 받았다.

 

전공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는 번번이 무시당했다. 대전협은 지난달 성명서에서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구조를 방조한 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냐”고 지적했고, 최근 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 개입을 요청하면서도 “정부가 전공의 근로 환경 개선 요구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1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을 찾은 시민이 의자에 엎드려 있다.   연합뉴스

열악한 처우를 외면한 건 스승들도 마찬가지다. 방재승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게 한 것은 저 역시 그러한 환경에서 배웠기에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며 전공의들에 사과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로 전공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연속근무 축소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신규 의료 기관의 의사 인력 확보 기준 심의 시 전공의를 전문의의 ‘0.5’ 수준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용 부담 논의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전문의를 많이 뽑게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부담은 국민과 의사가 같이 분담해야 한다”며 “국민은 양질의 의료를 받는 만큼 돈을 더 낼 각오를 해야 하고, 의사들은 더 인간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 수익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우·조희연·정진수·윤솔·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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