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토론이든 뭐든 좋으니 제 비전을 보여주고 능력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한창 4·10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각 당의 후보자를 뽑는 경선이 진행되던 때 지역구에 출마한 한 청년 예비후보자에게 들은 말이다. ‘경력직’인 현역 의원이나 기성 정치인에 비해 ‘신입’인 청년 정치인은 유권자들에게 생소한 탓이다.
경력이라는 쌓아둔 자산으로 승부하는 기성 정치에 맞서기 위해 청년 정치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적어도 뭔가 보여줄 기회가 주어져야 작은 관심들이 모여 불리한 지형을 극복할 최소한의 무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결과 국민의힘에선 9명, 더불어민주당에서는 8명의 2030세대만이 지역구 후보자로서 4·10 총선 열차에 올라탔다.
이번 경선에서 청년에게 증명의 기회가 주어진 곳도 있었다. 바로 민주당이 청년전략특구로 지정한 ‘서울 서대문갑’이다. 청년전략특구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청년들이 서로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무대가 될 수 있어 기대가 높았다. ‘슈퍼스타K’ 방식으로 청년 정치에 대한 붐을 일으킬 것이라는 평도 있었다.
그렇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스쳐 지나가듯 후보가 결정됐다.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5명의 후보가 정해졌고, 각 후보당 10분 정도 소요된 공개 오디션으로 최종 3명이 추려졌다. 후보 간 불꽃 튀는 토론은 없었다. 경선 과정도 다소 매끄럽지 않았다. 오디션 후에 정한 최종경선 후보 한 명이 ‘번복’됐고 투표 방식도 여러 번 바뀌었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에 있었던 실수가 나왔다. 수많은 미션과 성장. 그 과정에서의 증명. 거기서 오는 감동과 반전이라는 오디션 본연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아쉬운 시도다.
청년 정치에 관심이 필요하다. 더 긴 시간 동안 여러 단계에 걸쳐 후보자를 검증하고, 기준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서 정해 놓았더라면 반응은 더 뜨거웠을 수도 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했던 대한민국 아니던가. 재야에 있던 국민가수, 천재 댄서도 세심한 관심 속에서 태어났다. 국민을 대표할 국회의원도 다를 수 없다. 다양한 증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관심이 사라진 자리는 계파가 채웠다. 정치적 자산이 부족한 청년 정치인들은 기존의 강력한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진심은 알 수 없으나 계파의 외피를 쓰고 해당 계파의 목소리를 내야 주목받고, 계파에서 오는 팬덤을 등에 업어 기회도 얻는다. 이번에 각 지역구로 공천된 2030 후보 중 좋든 싫든 친명(친이재명), 친윤(친윤석열)의 이미지에서 자유로운 후보는 몇 없다. 청년 정치의 현주소다.
재능이 뛰어나면 어디서든 알아본다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을 꺼내어 송곳이 되지 못한 청년 정치인만을 탓하는 행태는 어불성설이다. 극복해야 할, 찢어야 할 주머니가 단단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다. 여야 모두 청년 정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청년 정치의 장은 펼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말 따로 행동 따로’를 유지한다면 청년 정치는 결국 주머니 속에서 질식하고 말 것이다. 청년들을 대변할 목소리와 청년만의 창의력 있는 정책 역시 꽃피우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기성 정치라는 단단한 주머니를 뚫어줄 숨구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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