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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이 날아온다. 봄바람을 타고 봄날의 대기를 팔랑팔랑, 경쾌하고 예쁘게 공중돌기를 한다. 민들레도 목련도 개나리도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이팝꽃도 나비들의 곡예를 홀린 듯 구경한다. 나비들은 홍제천을 걷는 나를 따르기도 하고 앞질러 가기도 한다. 날아다니는 불꽃, 흩날리는 꽃잎처럼 매혹적인 나비들의 계절이 왔다.

나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0)과 작가이면서 인시류 학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이다. 나는 이 두 사람을 나비 때문에 아주 많이 좋아한다. 석주명 박사가 이름 붙인 쇳빛부전나비가 갓 핀 진달래꽃 위에 앉아 있다. 쇳빛부전나비는 부전나비과로 1년에 단 1회(3월 하순부터 5월 말쯤까지)만 나타나는 나비다.

곳곳에 은가루를 묻힌 듯한 흑갈색(쇳빛) 작은 나비로 작아서 더 예쁜 나비다. 한국전쟁 때 석주명 박사가 20여 년 동안 채집한 나비표본과 연구자료가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인시류 학계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정말 아깝고 애석하다.

그에 반해 나보코프는 그 당시엔 작가로 더 알려져 그의 나비 연구를 취미로 간주하고 싶은 학자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가 남긴 나비표본과 자료들로 인해 당당한 인시류 학자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는가. 커트 존슨과 스티브 코츠가 공동 집필한 ‘나보코프 블루스’를 읽으면 나보코프의 나비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얼마나 아름답고 끈질긴지 생생한 감동으로 만끽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의 문학 작품도 좋지만, 그가 반바지를 입고 나비 채집망을 들고 산으로 계곡으로 나비를 쫓아다니는 그 모습도 무척 좋아한다. 그도 나처럼 부전나비과 나비들을 제일 좋아했다. 흩날리는 벚꽃처럼 작고 예쁜 나비들. ‘나보코프 블루스’를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나비를 그도 좋아할 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기뻐했던 기억이 새삼 그립다.

나도 몇 번쯤 나비 채집을 해보았지만, 나비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그만두었다. 내겐 평범을 넘어설 비범함이 없으니 절대 욕심내지 말고 눈으로만 만족하고 즐기자. 어릴 때부터 내가 나를 다독인 좌우명. 그 힘으로 가진 것 하나 없이도 이만큼 살아왔으니…. 나비들이 나와 놀자고 내 앞을 팔랑팔랑거릴 때면 두말 않고 그들과 함께 놀아준다. 사진도 찍어주고 아는 나비 이름은 크게 불러준다. 언젠가 내가 쓴 ‘나비들의 귀환’이란 시도 읽어준다.

“나비들이 날아온다./호랑나비, 노랑나비, 부전나비, 상제나비, 멧노랑나비, 붉은점모시나비, 큰수리팔랑나비, 암검은표범나비, 뱀눈없는지옥나비…//온종일 바라보고 바라보아도 눈에 다 넣을 수 없는 아름다움!//봄날의 향긋한 공기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햇살처럼/꽃에서 꽃으로 나비들이 날아온다.//날아오면서 마법과도 같은 그 신비한 날갯짓으로/눈앞의 풍경들을 모두 살아 있는 꽃밭으로 만들어놓는다.//이제 나비들은 그 꽃밭에서 사랑만 하리라./오직 사랑만….”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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