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했을 때, 한 미국인 학자가 가자지구에서 발발한 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어떠냐고 내게 물어왔다. 그 질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국내에서 그 전쟁과 폭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그다지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그 전쟁을 우리로부터 많이 먼 지역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참사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아닐까.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내가 신경 쓰고 관여해야 할 가까운 지역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정해질까. 일반적으로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심리적으로 가까운 나라 정도에만 가까운 이웃 나라라는 감정을 느끼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신경 쓰고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외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뉴스를 보는 동안에는 가슴 아파하지만 그러고 나면 그뿐, 그 거리감 때문인지 어떤 행동을 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의 경우 그 거리감을 단번에 허물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자지구 폭격의 잔해더미 아래에서 방탄소년단의 포토카드가 발견된 것이다. 회색빛 폭격의 잔해와 대비되는 생생한 컬러의 포토카드의 이질감만큼이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이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에게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아니다. 이 한 장의 포토카드는 단순히 앨범 속에 들어있는 굿즈가 아니라 전 세계의 아미들에게 그들과 같은 아미가 그곳에서 폭격을 당했다는 참담한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아미가 지구상 어딘가에서 이런 참사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아미들에게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그저 안타까운 뉴스에 그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사실은 가까운 내 이웃이 일을 당한 것 이상의 마음으로 그 사안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이렇듯 팬덤이란 같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공동체로서 기존의 지리적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 우리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정동적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이끈다. 이 정동적 공동체 속에서 팬심으로 촉발된 인류에 대한 관심은 지구촌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확산되며 사람들을 결집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K팝이 만든 팬덤에 대해 ‘정신나간 빠순이들’이라는 부정적 낙인은 거두고, 이 공동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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