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엊그제 판사 출신 오동운 변호사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전임자가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지 3개월이 지났다는 점에서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공수처가 직면한 최대 현안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엄정히 수사함으로써 각종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공수처는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1년 1월 더불어민주당 등 현 야권의 주도로 출범했다. ‘검찰과 기능이 중복된다’는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주당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 공수처 신설을 밀어붙였다.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공수처의 실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그간 청구한 구속영장은 모두 법원에서 퇴짜를 맞았고, 기소한 사건 중 사법부에서 유죄가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러니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공수처 무용론’이 불거지는 것 아니겠나. 오 후보자는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공수처가 독립 수사기관으로서 제자리를 잡고 효능감 있는 조직이 되도록 매진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공수처를 수사 전문가들로 채우는 인사가 그 첫걸음이 돼야 한다.
현재 공수처가 당면한 최대 현안은 채 상병 사건이다. 그가 지난여름 수해 대민지원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지 9개월이 지났는데도 사망 원인을 둘러싼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 엊그제 공수처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소환했으나, ‘윗선’으로 지목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조사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에선 특별검사 임명을 공언하고 나섰다. 지금의 야권 정치인들이 주도해 만든 기관이 공수처인데 정작 그들조차 공수처를 못 믿겠다는 것 아닌가. 오 후보자나 공수처로선 특검 도입까지 거론되는 현실을 부끄럽게 여겨야 마땅하다.
오 후보자는 채 상병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실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년간 법관으로 일했고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과 이렇다 할 인연도 없는 오 후보자야말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채 상병 사건 진상을 제대로 파헤칠 적임자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공수처가 철저한 수사에 나선다면 특검 무용론이 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오 후보자가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 논란을 속히 잠재워 수사기관으로서 존재감을 확고히 세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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