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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맞고 시작할래 아침부터?”…첫 직장 괴롭힘 못 견딘 20대, 결국

입력 : 2024-05-02 01:00:00 수정 : 2024-05-01 22: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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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에서 상사의 도를 넘는 괴롭힘에 시달리던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를 괴롭힌 상사는 징역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불과 25살의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전영진씨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고(故) 전영진씨 생전 모습. 사진 = 연합뉴스(유족 제공)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1단독 장태영 판사는 폭행 등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A(41)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2021년 8월 입사 이후 사망 전날까지 영진씨는 직장에서 받은 고통을 한 번도 가족에게 털어놓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유서 한 장 없이 떠난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형 영호씨가 ‘혹시 남겨놓은 음성메시지라도 있을까’ 열어본 휴대전화에는 영진씨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녹음돼 있었다.

 

“그리고 ○○○아. 내가 너보고 알아서 하라 그랬지? 그런데 왜 ○○○아. 너는 그 차 나갈 때까지 고통받을 줄 알아. 이 ○○○아.”

 

지난해 3월 21일 오전 10시 4분에 이뤄진 영진씨와 A씨 간 첫 통화녹음 내용에 영호씨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외에도 86건의 통화녹음 내용이 저장돼 있었다. 말 첫머리부터 온통 욕설로 가득한 A의 폭언은 5월 1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다시피 이어졌다.

 

“○○○○ 같은 ○○ 진짜 확 죽여벌라. 내일 아침부터 함 맞아보자. 이 거지 같은 ○○아”(3월 29일), “죄송하면 다야 이 ○○○아”(3월 30일), “맨날 맞고 시작할래 아침부터?”(4월 4일), “개념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4월 10일),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열두대야”(4월 19일)

 

입에 담을 수 없는 인격 모독적인 발언들 속에서는 폭행 정황도 드러났다. 심지어 A씨의 입에는 영진씨의 부모까지 오르내렸다.

 

사망 닷새 전 “너 지금 내가 ○○ 열 받는 거 지금 겨우겨우 꾹꾹 참고 있는데 진짜 눈 돌아가면 다, 니네 애미애비고 다 쫓아가 죽일 거야. 내일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아, 알았어?”에 이어 나흘 전 “너 전화 한 번만 더 하면 죽일 거야”라는 욕설을 들은 영진씨는 홀연히 가족들 곁을 떠났다.

 

가족들에 따르면 영진씨가 다녔던 강원 속초시 한 자동차 부품회사는 직원이 5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다. 영진씨에게는 첫 직장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약 20년 경력의 A씨는 첫 직장 상사였다.

 

입사 시기를 고려하면 괴롭힘이 더 있었으리라 추정됐지만, 통화녹음과 폐쇄회로(CC)TV 일부를 토대로 밝혀낼 수 있었던 범행은 주먹으로 머리를 때린 행위 4회, 협박 행위 16회, 정보통신망법 위반 행위 86회뿐이었다.

 

이는 공소장에 담긴 범죄사실일 뿐, 영진씨와 A씨 간 2개월 동안 이뤄진 통화 700여건 중 공소장에 담기지 않은 통화 역시 모욕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영진씨 가족을 도운 박혜영 노무사는 “현실에서는 무슨 일을 더 당했는지 몰라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법정에서 영진씨와 유족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만성 신장병으로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온 사정 등을 들어 선처를 호소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1단독 장태영 판사는 “피고인은 직장 상사로서 피해자를 전담해 업무를 가르치는 역할 등을 수행하면서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폭행을 가하고, 약 2개월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폭언, 협박을 반복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피해자는 거의 매일 피고인의 극심한 폭언과 압박에 시달렸다. 피고인의 각 범행 직후 불과 며칠 만에 피해자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피고인의 각 범행이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에 상당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장 판사는 “도저히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 두려움, 스트레스는 가늠조차 어렵다”며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고 했다.

 

장 판사는 “사랑하는 막내아들이자 동생인 피해자를 잃은 유족들 역시 커다란 슬픔과 비통함에 빠져 있다. 피고인에 대해 그 책임과 비난 가능성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A씨만 항소한 이 사건은 오는 30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다.

 

유족은 박혜영 노무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산업재해 신청을 준비 중이다. 박 노무사는 “자해 행위는 산재로 인정되지 않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과로로 말미암은 극단적 선택의 경우 인정되는 사례가 있어 다퉈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족은 또 A씨와 회사 대표를 상대로 최근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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