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5번째 임기를 시작한 블라디미르 푸틴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을 전격 교체해 눈길을 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이웃나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벌써 2년 넘게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외다. 옛말에 ‘전쟁 중에는 장수(將帥)를 바꾸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쇼이구가 2012년 11월부터 11년 넘게 러시아군을 지휘해 온 점, 푸틴의 신임이 두터워 한때 ‘푸틴의 후계자’라는 소문까지 나돈 점 등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외신들은 이번 인사를 ‘축출’(oust) 또는 ‘경질’(sack)로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2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점에 대해 푸틴이 국방장관의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내각의 일원인 장관은 정무직이다. 정해진 임기가 없다 보니 인사권자에 의해 잘리면 그날부터 실업자가 된다. 한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 대다수 나라가 그렇다. 다만 푸틴은 쇼이구를 매몰차게 내치진 않았다. 국방장관에서 물러나는 대신 우리나라의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회의(NSC)에 해당하는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에 임명됐다. 이 자리는 국가 의전서열상 국방장관보다 상급자라고 한다. ‘이전보다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간다’는 뜻의 영전(榮轉)에 해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권한은 국방장관에 크게 못 미칠 것이다. 푸틴 입장에선 쇼이구의 실권은 뺴앗되 그 체면만은 살려주는 식으로 나름의 배려를 한 셈이다.
한국 검찰은 최상위의 대검찰청 밑에 고등검찰청, 그 아래에 지방검찰청이 있는 구조다. 그런데 검찰청 서열과 그 수장의 위상 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고검장이 지검장보다 높은 것은 맞으나 밖에서 보기엔 지검장이 진짜 실력자이고 고검장은 존재감이 확 떨어진다. 지검은 수사권이 있지만 고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검찰을 출입할 때 어느 검사장으로부터 “지검에서 부장검사를 하면 점심, 저녁 약속이 끊이지 않으나 고검 검사가 되는 순간 밥 사겠다는 사람 하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2003∼2004년 정치권의 불법 대선자금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당시 노무현정부와 불편한 관계가 된 ‘특수통’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검사장급)이 2004년 6월 검찰 인사에서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을 때 ‘사실상 좌천’이란 평가가 나온 이유다.
13일 단행된 윤석열정부의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놓고 말들이 많다. 핵심 요직에 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사건 수사를 주도하던 검사들이 대거 자리를 옮기게 됐기 때문이다. 지검장은 고검장, 차장검사는 검사장으로 각각 영전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니 “불이익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수사에선 손을 떼게 되었으니 검찰 일각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당장 야권에선 “진행 중인 중대 사건 수사를 방해하려는 것”이라며 정치 공세를 펴고 나섰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수사팀을 교체하면서도 기존 지휘부는 승진시키는 이른바 ‘좌천성 승진’을 통해 검찰 내부의 불만을 최소화하려 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이런 평가가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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