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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부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화가는 피카소일까 마티스일까를 두고 논란이 있다. 피카소가 현실의 모방에서 미술의 형태를 해방시켰다면,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 마티스는 색채를 해방시켰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화가로는 단연 마르셀 뒤샹을 꼽는다. “작품의 창작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에서 많은 예술가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작품 창작과정을 살펴보자. 예술가들이 손으로 물리적 제작 행위를 한다. 한없이 계속하지는 않고, 마음으로 어느 순간을 선택하고 ‘이제는 됐다’라고 생각하면서 미술작품으로 결정하고 제시한다. 뒤샹은 두 과정 중에서 손을 통한 물리적 과정보다 마음을 통한 선택과 결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예술가가 마음으로 주변의 사물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미술작품으로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창조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흥미로운 물건들이 너무 많이 있다. 그런데 굳이 예술가들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마르셀 뒤샹 ‘자전거바퀴’(1913)

뒤샹에 의하면, 기성품 변기도 병 건조대나 자전거바퀴도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자전거 바퀴’이다. 버려진 의자를 받침대 삼아 자전거 바퀴를 뒤집어서 얹어 놓았다. 그랬더니 자전거 바퀴의 둥근 틀이 반짝이며 당당한 자태를 뽐낸다. 촘촘히 채운 바큇살들의 모양도 예사롭지 않다. 바큇살들이 서로 어긋나게 교차하면서 만들어낸 공간감도 보이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도 느껴진다. 소리를 내며 움직이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기도 한다. 형태, 공간감, 움직임, 소리, 거기에 그것들의 조화까지 갖추고 있어 어느 추상조각 작품 못지않다.

뒤샹이 미친 영향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일상사물이나 이미지를 미술로 끌어들인 팝아트가 있고, 예술가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개념미술도 있으며, 예술가의 행위도 작품 구성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액션페인팅이나 프로세스 아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발상의 전환! 예술이든 삶이든 꼭 필요한 덕목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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