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자체브랜드(PB) 등 자기상품의 검색순위를 조작한 행위 등과 관련해 경쟁당국으로부터 1400억원의 과징금 제재를 받은 뒤 “로켓배송 서비스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친숙한 대표적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볼모 삼아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다. 검색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기상품을 상단에 올린 행위가 공정위 조사를 통해 드러났지만 혐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로켓배송을 거론하며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이 특정 서비스에 의존하는 ‘락인’ 효과를 무기 삼아 쿠팡이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공정위의 제재 결정 이후 “공정위가 쿠팡의 로켓배송 상품 추천을 금지한다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매년 수십조원을 들여 로켓배송 서비스를 구축했는데, 로켓배송 상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판매할 수 없다면 재고 부담으로 해당 서비스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쿠팡의 이런 입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내용에 비춰봤을 때 관련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13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쿠팡은 2019년 2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알고리즘을 조작해 최소 6만4520개의 자기상품(직매입 5만8658개, PB상품 5592개)을 검색순위 상위에 고정 노출했다. 구매전환율, 가격, 구매후기 등이 반영돼 산출된 검색순위 결과를 무시하고 알고리즘상 마지막 단계에서 검색순위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것이다. 인위적으로 순위가 올라간 상품에는 판매가 부진한 상품, 납품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기로 한 상품 등도 포함됐다. 쿠팡은 “판매량 등 객관적 데이터로 상품 검색순위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2015년 밝혔지만 실제는 달랐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행위로 소비자들이 오랜 기간 피해를 봤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확보한 쿠팡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쿠팡이 자기상품을 상위에 고정 노출하지 않는 경우 쿠팡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의 평균 판매가격이 하락한다고 명시돼 있다. 바꿔 말해 3년이 넘게 이뤄진 쿠팡의 검색순위 조작으로 상품들의 평균 판매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공정위 제재의 핵심이 ‘소비자를 기만한 알고리즘 조작’이라는 점에서 로켓배송 서비스가 위축될 것이란 쿠팡의 입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역시 설명자료를 통해 “로켓배송이나 일반적인 상품 추천행위를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위계(목적 달성 위해 상대방을 오인·착각하게 하는 것)행위를 중지하더라도 로켓배송 상품 등에 대해 검색광고, 배너광고, 검색결과에 대한 필터 기능 적용(예:로켓배송 필터로 로켓배송 상품만 노출)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상품을 소비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쿠팡이 시장지배력을 기반으로 독점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소비자들이 로켓배송에 친숙해져 있어 해당 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락인’(잠금) 효과를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쿠팡이 소비자들의 락인 효과를 활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쿠팡은 지난 4월 와우멤버십 요금을 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 인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자를 모집해 시장 지배력을 키운 뒤 그간의 손해를 가격 인상으로 메우려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 경쟁법 전문가는 “쿠팡의 이런 행위는 소비자가 해당 서비스에 락인 돼 못 빠져나가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은 소비자가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멤버십 가격 인상 동의를 받고 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현재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