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순 시인이 45년간의 서울 생활을 끝내고 소백산 자락 경북 예천으로 귀향해 청년 시절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삶, 그리고 옛집으로 돌아와 느낀 단상 등을 담은 책을 펴냈다. “변혁을 꿈꾸며 직장에서 쫓겨나 떠돌던 시절”의 투박함이 보이는가 하면,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외딴 시골 역을 통해 대처를 오가던 시절의 애틋하고 아쉽고 그리운 추억이 담긴 글도 있다.
24편 각각의 글은 특정한 제재에 따라 쓴 것이 아니며, 쓴 시기도 다르다. 그럼에도 글에 담긴 정서는 평소 저자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주되고, 현실에서 맞닥뜨린 고민이 겹쳐지면서 깊이와 넓이를 더함으로써 한 줄기로 꿰어진다 할 수 있겠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 곁에 왔던 성자’, ‘달빛 띠고 자맥질하며 오시는 나그네’, ‘판타지 그러나 너무나 사실적인’, ‘꽃피는 것만 알고 꽃 지는 것을 모르는’ 이 네 편의 글은 독서를 진작시키고자 하는 글이다. ‘내가 시를 쓰는 열 가지 이유’와 ‘이 시 이렇게 썼다’는 4권의 시집을 상재한 저자가 어떻게 시를 만났는지, 그리고 시를 쓰는 방법이나 행위를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늦게 온 편지 그리고 반성문’, ‘낙백한 영혼에서 떠도는 몸으로 살아가며’, ‘따뜻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다’, ‘부조리하고 모순된 교육 현장을 극복하고자 한 몸부림’은 책의 발문이나 해설 혹은 서평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목숨을 걸고 살다간 이의 발자취를 좇아’와 ‘벼랑 끝에 핀 패랭이꽃 한 송이’는 교사 문인단체인 “교육문예창작회”와 초대 회장인 이광웅 선생님에 대한 글로, 150여 선생님들이 “시와 노래의 밤” 행사로 전국을 순회하며 교육운동의 당위성과 타당성을 알리고 관심과 사랑을 호소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순결한 영혼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좇아’는 저자가 일본 교토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에서 도시샤대학으로 다니던 길을 직접 걸어보고, 윤동주 시인이 갇혀 있던 시모가모 경찰서를 돌아보고 쓴 글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앞서간 분들의 희생이 있음을 일깨워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여러 인연으로 저자와 ‘동류 종족’이며 ‘동지’라는 안도현 시인은 “조성순 형은 광대한 풍경 앞에 서는 걸 특히 좋아해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동네로 들어오는 길을 몇 걸음 산책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한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책에 그려진 황새의 보폭은 시원시원하고 발자국의 무늬는 아릿하다”고 했다.
책 속에 ‘정지된 시간 속의 등대, 어등역’이 나타나는가 하면 ‘소를 타고 내를 건너고 무명 홑이불을 덮고 강변에서 자던’ 날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아득히 너른 모래사장을 달구는 뙤약볕 아래 물이 남실남실 흐르던 기억 속의 내성천은 강바닥에 뿌리내린 버들이며 자갈밭으로 바뀌어 예전의 아름다움을 잃었다. 그런 현실을 마주하면서 저자는 40년 만에 다시 찾은 어등역에서 이용악 시인을 빌어 말한다. “나는 울 줄을 몰라 외롭다.”
조성순은 동국대 국문학과를 나와 석사과정에서 현대문학을, 박사과정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2004년 <녹색평론>에 시 ‘애기복수초’ 외 3편을 발표하고, 2008년 <문학나무>에서 ‘산월수제비’ 등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2011년 제12회 교단문예상(운문 부문)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목침』,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나는 걸었다』, 『왼손을 위하여』를 상재했고, 경북의 전통마을을 소개하는 『돌담 아래 옹기종기 대문 안에 소곤소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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