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서열 2위 담화서 美 비판
서방의 러 본토 공격 위협 거론
“러시아군·인민과 함께 있을 것”
북·러 신조약 효력 발생 전부터
양국 밀착된 공동 행보 예고해
尹 “안보 상황 엄중… 대비 만전”
북한이 김정은 최고사령관 다음으로 군부 서열 2위인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앞세워 서방의 러시아 본토 공격 지원 가능성에 반발했다. 북·러정상회담 이후 군 고위직의 첫 대외 담화다. 한반도 안보 환경을 뒤흔드는 북·러의 동맹 복원(‘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깊게 연관되고 있다는 징후로 우려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망솔한 객기는 천벌을 자초하기 마련이다’라는 제목의 박 부위원장 명의 담화를 공개했다. 담화는 미국이 ‘거치장스러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극악한 반(反)러시아 대결광의 진모를 깡그리 드러냈다”고 규탄했다. 최근 미국이 미국산 무기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되도 되도록 기존 제한을 완화해나가고 있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미국은 확전을 우려해 미국산 무기를 이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을 금지해왔다. 전선 상황이 악화하고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이 제한을 풀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자 제한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거나 공격하려고 한다면 우크라이나가 국경을 넘어 공격하는 세력에 맞서 반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한 바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본토 공격 지원 시사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며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며 ‘맞불 대응’을 경고했다.
박정천 부위원장은 담화에서 설리번 보좌관 등 미국 당국자들의 발언을 열거하면서 “망발”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조치가 “젤렌스키 괴뢰도당을 러시아 영토 종심 깊이에 대한 무모한 공격으로 내몰아 날로 열악해지고 있는 전황을 수습해보려는 부질없는 궁여지책”이라며 “미국의 위정자들이 지금처럼 앞뒤도 가림없이 저들의 전쟁기계인 우크라이나를 반러시아 대리전쟁터를 향해 계속 돌진케 한다면 러시아의 보다 강력한 대응을 불러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국가의 주권적 권리와 전략적 안정, 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지난 19일 방북 직후인 이날 북한이 군부 최고위 인사인 박정천의 기명 담화로 러시아를 강하게 옹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이번 담화가 러시아가 가장 우려해온 서방의 러시아 본토 공격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거론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북·러 신조약은 아직 비준되지 않아 효력을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마치 효력 발생 이후 북·러의 밀착된 공동 행보를 예고하듯 러시아의 핵심 요구를 강력히 지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 본토 공격 지원 가능성은 이번 북·러 신조약 체결의 ‘트리거’(방아쇠)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돼왔다. 한반도가 러-우 전쟁에 엮여들어가는 기점으로 보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제국주의 성격의 국가들은 제3국 전쟁에 개입하면서도 절대로 본국에 살상무기가 사용되지 않도록 전쟁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레드라인을 향해 치킨게임을 벌이는 러-우 전장의 긴장이 이번 북·러조약 체결에 미친 영향을 우려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조약이 “집권 5기를 시작하는 푸틴 러시아의 대전략과 무관하지 않으며, 러시아가 북한의 중요성을 재인식한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했다. 그는 “서쪽에서 미국과 나토를 상대로 일전을 각오하는 러시아에 동방의 친러국가 북한은 소중한 전략자산이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동아시아의 나토(NATO)처럼 인식하는 러시아로서는 북한 체제에 대한 위협이 러시아 지정학에 대한 도전이 된다”고 했다.
이어 “한반도에 전쟁의 불씨가 옮겨붙지 않도록 동맹, 우호국들과의 안보협력에 만전을 기하면서도 대러 외교 관리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엄중하므로 안보 태세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이도운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 수석은 “러·북 조약과 중동 사태 등이 미칠 군사 및 경제 안보에 관해 확고한 대비 태세를 유지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4일 텔레그램을 통해 “한국이 새로운 ‘러-북 조약’에 호들갑을 떨고 있다”며 “한국이 대러 제재를 경솔하게 고수한다면 양국 관계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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