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11시 다 돼서야 퇴근”
경대부초 교사 갑질 폭로 파장
군대 못지않게 위계질서 엄격
선배 퇴근 전까지 집 못 가거나
교장 성과급 부족분 메꾸기도
승진 체계 ·교감추천권 원인 꼽혀
교원단체 “부당 문화 대책 필요”
“1년차 교사는 교무실에 출입하려면 2~3년차 교사에게 먼저 보고해야 했다.”
“남자 교사는 넥타이가 필수였는데, 1년차는 흰색 셔츠와 단색 넥타이만 할 수 있었다. 셔츠에 줄무늬가 들어가면 폭언을 들었다.”
현직 초등교사들이 전한 국립초등학교의 조직적인 ‘갑질 문화’ 실태다. 최근 경북대사범대부설초(경대부초)의 한 교사가 쓴 폭로글이 퍼지면서 국립초(사범대·교대 부설초)에 만연한 갑질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립초에서 근무했던 교사들은 ‘군대 못지않은 수직적인 분위기에 고통받았다’고 호소했다.
26일 대구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경대부초 교사 A씨는 최근 같은 학교 교사들에게 ‘불법 감금과 갑질을 멈춰달라’는 편지를 썼다. A4 용지 6장 분량의 글에는 A씨가 올해 2월 발령 뒤 넉 달여간 겪은 사례들이 빼곡하게 적혔다.
그는 “모든 교사 퇴근 뒤 퇴근할 수 있어서 매일 밤 11시쯤 퇴근했다”며 “늦게 퇴근하는 교사에게 언제 가는지 물어봤다가 혼나서 언제 퇴근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아픈 날에도 보건실에 있다가 가장 늦게 퇴근했다”고 썼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나와 모든 교실 문을 열고, 각 반에 택배를 배달하는 등 잡일을 도맡아 했다며 “노예처럼 부리는 갑질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해당 글이 퍼지며 논란이 되자 경북대는 감사에 들어갔다.
교직 사회에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립초의 부당한 상명하복 문화는 경대부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국에 17곳이 있는 국립초는 교육 질이 높아 학부모에게 인기가 높고 교사 사이에서도 발령받기 힘든 학교로 꼽히지만, 그만큼 빡빡한 위계질서로 유명하다. 국립초 근무 경험이 있는 교사들은 선배 퇴근 뒤 퇴근하거나 출근 복장을 강요당하는 등 일상 통제가 엄격했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 B씨는 “연차가 군대 계급과 비슷하다. 저연차 때 복장 문제 등으로 선배들에게 혼났고, 교무실에 갈 때 덜덜 떨면서 갔다”며 “교장·교감 마음에 안 들면 징계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교장은 왕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료 교사가 상을 당해 빈소에 갔을 때 교장이 오자 모든 교사가 두 줄로 서서 길을 만들었을 정도”라며 “아이들에겐 최상의 학교였겠지만 너무 힘들었다. 교사의 3분의 1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교사 C씨는 ”저연차 교사는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뭐든 선배 허락이 있어야 했다”고 했다. 교사 성과급으로 교장 성과급을 메웠다는 교사도 있었다.
국립초에 유독 이런 갑질 문화가 있는 것은 국립초 근무가 승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교사 D씨는 “국립초 근무 시 높은 연구점수를 받을 수 있어 승진에 결정적이다. 들어가기 힘든 곳인 만큼 부당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며 “조직에서 밉보이면 평가를 잘 못 받아 다들 참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국립초 교사는 대부분 대학 시절부터 선후배여서 폐쇄적”이라며 “찍히면 교직 생활 내내 힘들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국립초의 ‘교감 추천권’도 문제로 꼽힌다. 국립초 교장이 매년 1∼2명의 교감 추천권을 행사하다 보니 학교 관리자들이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는 구조란 것이다.
교원단체는 부당한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보미 대구교사노조 위원장은 “국립초 근무가 승진 ‘패스트 트랙’ 역할을 해 적폐행위가 묵인된다”며 “교육청에도 국립초 출신 장학사 등이 있다 보니 갑질 신고를 하면 신고 내용이 알려질 것이란 두려움이 크고, 신고해도 주변 교사가 도와주지 않아 교육청은 증거 불충분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대구에서 교사 갑질 신고가 18건 있었지만 모두 갑질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외부기관에서 감사하거나 교사의 직장 내 괴롭힘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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