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는 감성적 경향과 이성적 경향이 대조를 보이며 진행되어 왔다. 감성적 경향의 작품은 감정과 관련된 표현을 강조하고, 색이나 명암대비를 통해 극적이며 역동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려 했다. 이성적 경향의 작품은 선이나 데생을 강조하고, 조화와 균형의 형식으로 정적이며 차분한 분위기를 나타내려 했다.
대표적 예는 19세기 초 서로 대립한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후 유럽 사회는 근대시민사회로 향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낭만주의는 격동하는 현실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했고, 색과 불규칙적인 형태로 긴장감 있는 화면 구성을 이루려 했다. 대표적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였다. 이에 반해 신고전주의는 혁명 이후의 혼란을 예술을 통해서 정화시키려 했고, 선과 데생을 강조한 절제와 균형의 형식을 선보였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개척자였다.
다비드의 제자였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도 선과 데생을 강조했고, 절제된 형식을 중시했다. 그림 소장자였던 발팽송의 이름을 딴 ‘발팽송의 목욕녀’에서 그런 특징이 보인다. 간결한 선과 면의 단순한 형태로 여인의 뒷모습을 압축해서 나타냈다. 한쪽으로 가지런히 젖힌 커튼 아래 틈 사이로 목욕물이 흘러나오는 걸 보니 이제 막 목욕을 하기 위해 옷을 벗은 모습 같다. 목욕물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없는 평온한 장면이어서인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지는 신고전주의 작품이다.
앵그르는 다비드와 달리 시대의 감성적 분위기도 나타내려 했다. 다비드의 강하고 견고한 느낌의 선과 달리 우아한 느낌의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해서 관능적인 육체를 표현한 점을 들 수 있다. 가파르게 처진 어깨선이나 두꺼운 허리와 엉덩이 사이의 관계도 해부학적 정확성에서 벗어나 있다. 머리에 쓴 터번의 문양과 색상은 낭만주의자들이 동경한 터키나 모로코 같은 이국적인 곳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신고전주의 특징을 살리면서 시대의 낭만적 분위기도 담고 있다는 뜻에서 앵그르는 ‘차갑게 얼어붙은 낭만주의자’로 불린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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