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명은 구술 전통에서 이성주의와 개인주의를 태동시켰다. 반대로 로마 문명은 문자 언어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종교나 주술 대신 학문과 법, 과학의 성장을 가져왔다. 이를 통해 로마는 관료제를 구비하고 법체계를 확립, 세상의 중심에 섰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독일에서 성서를 발행케 함으로써 종교개혁으로 이어졌고, 개인주의와 대중문화의 번성을 가져왔다.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 수단의 변화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TV는 현대사회와 현대인을 규정짓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하나다. 현대인의 삶과 행동양식은 TV 미디어 영향권 아래에서 정의돼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미디어 플랫폼의 다변화로 오늘날 TV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TV가 지녔던 영광과 권위를 이제는 스마트 기기가 차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TV 드라마나 연예오락 프로그램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소비한다.
TV가 명성을 유지하는 분야 중 하나가 토론회다. 백미는 선거 때 후보가 출연해 치열한 공방을 펼치는 TV 토론일 것이다. 1997년 대선은 우리나라에서 TV 토론이 도입된 최초의 선거다. 지금은 대통령·국회의원 선거, 시·도지사 선거는 물론 교육감 및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까지 누구나 공직선거법에 따라 TV 토론을 한다. 선거의 당락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의 나라일이긴 하나 27일 오후 9시(한국 시각 28일 오전 10시) 미국 대선의 최대 분수령으로 꼽히는 TV 토론이 열렸다.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82)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은 청중도, 사전 원고도 없이 선채로 90분간 설전(舌戰)을 벌였다. 토론에서 곧잘 흥분했던 트럼프는 이전과 달리 차분한 모습이었다. 바이든은 기침을 하거나 자주 말을 더듬어 ‘고령 이슈’를 잠재우지 못했다. 첫 격돌에서 “트럼프가 잘했다”는 반응이 월등히 높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가 TV 토론 직후 칼럼을 통해 “후보 자리를 내놓기를 바란다”고 했을까. 한차례 ‘트럼피즘’(Trumpism)을 경험한 전 세계 고민이 깊어질듯 싶다. 많은 분야에서 미국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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