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북향민’ 엄에스더의 15년 대한민국 봉사기 “우리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 [심층기획-‘먼저 온 통일’ 탈북민]

, 세계뉴스룸

입력 : 2024-07-01 07:00:00 수정 : 2024-07-01 16:34: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유니시드 이끄는 엄에스더 대표

엄에스더(39) 유니시드 대표는 탈북 후 중국을 거쳐 20대 초반에 한국에 입국했다. 15년 전 정착 초기부터 혼자 봉사활동을 다녔고 유니시드를 이끈 지는 이달로 10년을 채운다. 분단국가에서 살면서 분단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고 정치의 영향을 받는 점을 활동의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탈북민에 대한 인식 개선과 남, 북 출신 주민 간 마음의 벽을 허물면서 느낀 보람이 있어 활동을 지속했다고 한다. 탈북은 ‘타임머신 타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탈북민에겐 3세대를 공감할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봉사를 시작한 계기부터 유니시드 설립까지, 남한에서 새로운 인생과 함께 시작한 ‘15년 봉사기’를 직접 들어봤다.

엄에스더 유니시드 대표가 지난 5월 18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대화하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탈북민 대신 북향민, 남향민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뭔가요?

 

“어떤 사람들은 남한 사람은 일반 주민, 북에서 온 사람을 탈북민, 이렇게 구별하더라고요. 그냥 똑같은 사람인데 탈북민, 비탈북민 그렇게 불러야 할까요. 그냥 북이 고향인 사람, 남이 고향인 사람이라고 부르면 서로 동등한 사이가 되니까, 탈북민보다 북향민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어요.” 

 

-탈북민끼리 단체를 만들지 않고 왜 남향민, 북향민 같이 한다는 콘셉트를 생각하게 됐나요?

 

“처음부터 그런 콘셉트를 정하고 봉사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입국한 지 올해 15년째인데, 봉사활동을 매달 했어요. 10년 전 유니시드를 하기 전에, 5년간 혼자 봉사활동을 할 때 느낀 게 있어요. 복지관에 가서 봉사했는데, 제가 말투도 이상하고 그러니 같이하던 어머님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죠. 자기는 애들 봉사시간 때문에 온 건데 너무 기특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사회는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더 많아요. 미디어에 나오는 탈북민 이슈는 부정적 이슈가 70∼80%는 되잖아요. ‘아, 이게 탈북민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겠구나’ 싶었어요. 저 혼자 할 땐 제 주변 서너명의 인식이 바뀔 테지만, 여럿이 같이하면서 40명, 400명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냥 우리가 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부터 바뀌어서 점차 퍼져나가지 않을까 생각했죠.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우리 함께 살아가는 연습은 탈북민만이 아니라, 남북 출신이 같이 만나서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만나지 못해서 편견이 있고 마음의 벽이 있는데 그건 만날 때 해소가 되더라고요. 만나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삶에 같이 치열하게 뛰어들어 사는 사람들이죠. 이런 자리에서 만나면 마음의 벽을 부수는 계기가 되겠다 싶었어요. 취약계층 도시락 나눔은 작은 활동이지만, 같이 살아가는 연습을 해보자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에 취약계층이라는 사람들,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남북의 사람들이 함께 인권 감수성, 평화 감수성을 갖는 일들이 우리 사회 인식 개선에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이런 형태로 지속하게 된 거죠. 비영리단체로 만든 이유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참여의 문턱을 없애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크리스천은 크리스천끼리 만나고 좀 이런 관습들이 있다 보니까,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도 다 같이 만날 수 있는 게 시민단체라고 생각했어요.”

 

- 그래도 본인도 처음에 힘들었을 텐데요. 탈북과 국내 입국이 타임머신 타는 거라면서요.

 

“사실은 저도 집에서 첫 탈북자고 동생 데려오고 어머니 데려오고 하면서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엄마를 도와서 우리 가정을 좀 더 잘 꾸려보자, 잘살아 보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 삶이 너무 치열하더라고요. 동생 중 북에 남아있던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삶을 포기할까 싶은 생각이 들고 너무 무기력해졌어요. 가족을 돌보고 싶어 여기까지 왔는데 가족을 못 지켰다는 생각에요. 대체 왜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 단지 먹고 사는 게 삶의 전부라면 안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고요. 신께 왜 나는 북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탈북민으로 살아가나 수없이 물었어요. 하나 된 한반도를 준비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답을 찾았고,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또 물었죠. 저는 지연도 혈연도 이곳에 없는데 제가 뭘 할 수 있겠냐고요. 남, 북 출신을 만나게 해주는 일들을 하란 거구나 깨달았어요. 또 제가 3세대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여기 온 게 20대 땐 데,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공감할 수 있었거든요. 탈북민들이 먹는 ‘퐁퐁이’(옥수수를 튀김 과자)를 보시고 어르신들이 ‘이거 우리도 예전에 먹던 거다’라고 하시고, 어르신들이 젊었을 때 겪은 것들이 다 저희가 북에서 겪었던 경험이라 공감이 되더라고요. 저희가 제2의 실향민이기도 하고요. 청년세대에게는 저 역시 청년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공감되고요. 남, 북 모두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어떤 다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10년째가 되는 해라 올해 초에 한 번 따져보니까, 제가 여기 온 지 154개월 됐는데 그중 140개월을 했더라고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나가서 꾸준히 했는데, 참 좋았어요.”

엄에스더 유니시드 대표. /2024.06.26 이제원 선임기자

- 다른 북향민, 남향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탈북민 친구들에게는 저처럼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텐데, 언젠가는 나도 누굴 도울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자기 효능감, 존재감을 알면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남향민들에게는 만남을 통해서 탈북민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우리가 다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라고, 꿈을 찾아온 사람들,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었어요.“

 

- 활동에 어려움은 없나요? 보람은 뭔가요?

 

“우리가 환경문제라고 하면 모두가 공감하잖아요. 그런데 분단국가에서 살면서 분단 비용을 지출하고 분단으로 인한 위험을 감수하고 사는데도 사람들이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공감하는 사람들, 관심 갖는 사람들이 적어요. 또 탈북민, 통일 이런 영역이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분단돼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저희는 정치나 정권과 관계없는 시민단체긴 한데, 이쪽 분야는 사람들의 바라보는 시선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면 하는데 함께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안타까운 부분이죠. 그런데도 10년간 하게 된 건, 오시는 분들이 주는 피드백 덕분이에요. 북향민이 한민족을 넘어 우리 이웃이고, 함께 살아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인식하고, 갖고 있던 편견들이 깨지는 계기가 됐다는 고백을 듣게 되면 보람을 느끼고 이 일을 지속하게 되는 동기부여를 받아요.”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채연 '깜찍하게'
  • 이채연 '깜찍하게'
  • 나띠 ‘청순&섹시’
  • 김하늘 '반가운 손인사'
  • 스테이씨 수민 '하트 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