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약혼자 데이지의 행복을 위해 지난한 여정에 뛰어든다. 돈을 벌고 생활의 안정을 이룬 뒤에는 더 큰 부(富)를 찾아 떠난 약혼자에게 배신당하며 데이지의 죄까지 뒤집어쓴 채 기꺼이 죽음을 맞는다. 물질문명 속 위대한 정신의 가치를 보여준 이 소설은 어떤 울림을 줄까.
각박한 삶에 방치된 현대인들은 여전히 ‘운명적 만남’과 ‘순수한 사랑’을 꿈꾼다. 반면 출산율은 끝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이상적 사랑의 결핍에 기인한 것일까. 미국 역사학자인 페기 오도널 헤핑턴의 책 ‘엄마 아닌 여자들’에는 인구 감소의 책임을 오롯이 청년에게 떠넘기는 기성세대의 얄팍한 오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성세대들은 “책임감 없는 요즘 젊은 애들이 출산을 포기했다”며 사회 문제가 아닌 생물학적 문제로 치부한다. 핵가족화와 노동환경, 공동체의 붕괴, 교육문제 그리고 정부의 무능은 덮이고 만다.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미혼남녀 짝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만혼(晩婚) 예방과 출생률 제고를 내걸고,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온 일부 지자체는 성공한 듯 보인다. 호텔을 빌려 청춘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고 서로 마음에 드는 이성의 연락처를 전달하는 식이다. 매회 40% 넘는 커플 성사율은 보도자료로 홍보된다.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모임에 참석한 한 남성은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이 대열에 합류한 경기 성남시는 최근 첫 성혼 소식을 알렸다. 가성비로만 보면 나쁘지 않다. 지난달까지 7차례 행사의 1인당 소요예산은 42만원꼴이다. 판교 밸리 등 성남 소재 직장인과 시에 거주하는 39세 이하 남녀가 대상이다. 시청의 저출생 관련 팀이 주관한다는 점에선 분명히 저출생 해소책이다. 다만, 성혼율로 따지면 0.3% 안팎, 출생율은 ‘제로(0)’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서울팅’이라는 미혼남녀 어울림 행사를 기획했다가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고 곧바로 철회했다. 반면 2016년 전국 첫 결혼장려팀을 꾸린 대구 달서구는 ‘고고미팅’을, 2017년 행사를 시작한 전남 광양시는 ‘솔로엔딩’을 이어오고 있다. 충북 청주시는 지난해 7월, 세종시는 올해 5월 비슷한 행사를 재개하거나 시작했다. 경북도는 이달 크루즈여행을 경품으로 내건 4박5일간의 ‘청춘시 연애읍 솔로마을’을 시작한다. 이런 행사 하나 없는 지자체는 유행에 뒤진다는 자괴감에 빠질 만하다.
정작 시민단체 반응은 냉담하다. “저출생의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직장문화, 미흡한 보육 인프라 등 다양하다.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은 일자리·주거·보육·복지 등 시민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지 미팅 주관은 아니다”는 이유에서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추진하는 만남 행사는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근거를 둔다. ‘지역사회, 경제 실정에 맞게 관련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해보는 게 낫다는 말도 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실효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오롯이 지자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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