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도 오픈런?… 외국인 일요일에 줄 서는 까닭은 [밀착취재]

세계일보

5대銀 ‘외국인 고객 모시기’ 경쟁

평일 방문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 겨냥
특화지점 열고 현지어 가능 직원 배치
휴일 외화 송금 등 특화서비스 선보여
보험 가입에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도

하나, 16개 언어 해외송금 전용 앱 가동
KB·우리·신한도 다양한 상품들 내놔
올들어 외국인 신규 고객 14만명 넘어

“패스포트 앤드 아이디 카드, 플리즈(Passport and ID card, please·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주세요).”

지난달 23일 한산한 일요일인데도 오전 10시 가까이 되자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금융센터점 앞에는 50명이 넘는 이들이 줄을 섰다. 문이 열리자 줄줄이 들어간 이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이곳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일요 영업점(전국 16개 지점)으로, 하나은행은 경기 안산, 평택, 경남 김해 등 다른 외국인 근로자 밀집지역에서도 운영 중이다.

지난 6월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금융센터점 앞에서 개점 시간을 앞두고 외국인들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외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박미영 기자

을지로금융센터점 직원은 “일요일은 종일 고객이 많아서 점심도 교대로 도시락을 먹고 업무 처리에 집중하고 있다”며 “외국어가 가능한 직원들을 중심으로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전 10시30분에 은행을 찾은 한 외국인은 3시간 넘게 대기해야 한다는 직원 안내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일찍 도착한 필리핀인 베벤틴씨는 “본국에 돈을 송금하기 위해 왔다”며 “평일에는 일해야 해서 직접 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과 함께 이주 노동자, 유학생 등 국내 거주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은행권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특화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외국인 밀집지역에 특화 지점을 개설하는가 하면 평일 방문이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해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지점을 운영한다. 나아가 근로자 전용 보험 가입부터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까지 돕는 등 외국인 고객 모시기 경쟁이 한창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신규 외국인 고객 수는 14만433명에 달했다. 2021년 통틀어 20만명을 넘어선 신규 외국인 고객은 2022년에는 31만명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38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올해도 이런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적별로는 은행 대부분 중국인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고 베트남과 태국, 미국 출신도 있다.

신규 외국인 고객 수가 늘어난 이유는 코로나19의 종료와 함께 국내 외국인 근로자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250만7584명으로 전체 인구(5137만명)의 4.89%를 차지했다. 국내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은 늘어나는 외국인을 겨냥한 특화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은행권은 입출금 통장·적금 등 예금 거래를 위해 현지 언어가 가능한 직원을 배치하고 외환송금센터 등 특화 지점을 확대하는 중이다.

하나은행은 외국인 근로자의 이용 편이성을 높이고자 해외송금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16개국 언어로 제공하는 한편 해외송금 전용 계좌(easy-one) 서비스도 마련했다. 금융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맞춤형 금융교육도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외국인 근로자가 공항에서 퇴직금을 수령할 수 있는 ‘출국 만기보험’을 내놓았다. 보험금 지급을 신청한 외국인 근로자는 국민은행 인천국제공항지점과 일반구역 환전소에서 보험금 환전 신청 후 면세구역 환전소에서 외화 현찰로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