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여명학교, 우리 동네엔 안 돼” 부정 인식 여전… 멀고 먼 통합 [심층기획-'먼저 온 통일' 탈북민]

, 세계뉴스룸

입력 : 2024-07-02 06:00:00 수정 : 2024-07-02 13:15: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님비에 상처… 커지는 거리감 (하)

대안학교·문화센터 추진 때마다
지역 주민들 거센 반대에 부딪혀
겨우 자리 잡거나 ‘떠돌이 신세’

2023년 “탈북민에 친근감” 19%
해마다 긍정적인 인식 줄어들어
동남아 31%·일본인 22%比 낮아

北 대규모 난민 발생시 선별수용 50%
사회부담 가중 우려 전면 차단도 10%
“분단과 다문화 연결해 공존 고민해야”

#1.‘주민배제 탈북시설, 밀실야합 결사반대!’ 2016년 통일부가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내 남북통합문화센터를 건립하려 하자 주민들이 내걸었던 플래카드 문구다.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2500명의 탄원서가 구청에 제출됐다. 복합문화공간이었지만 주민들은 센터를 “이념시설”이라고 부르며 거부감을 표출했다. 공청회나 온라인 등에선 “학교 앞 이념지향적이고 투쟁적 단체의 집합소는 부적절하다”, “꺼림직하다”, “삐라 뿌리며 물의를 일으킬 걸 생각하면 까마득하다”는 등 반발이 쏟아졌다. 2018년 준공 목표였던 이 시설은 2020년에야 문을 열었다.

 

#2.3년 후,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2019년 서울 중구에 있던 탈북민 대안학교 ‘여명학교’가 은평뉴타운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은평구 주민이 반발했다. 여명학교는 2004년 개교해 교육청 학력인가를 받고 졸업생들을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 진학시켰다. 기부 등 각종 선행으로 매스컴도 탄 학교다. 하지만 ‘탈북’이란 말에 온라인엔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구청엔 민원이 쏟아졌고 일부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강남에 지어라”라는 냉소와 압박에 구청은 추진을 중단했다. 결국 은평 이전은 무산됐고 여명학교는 강서구의 한 폐교로 임시 이전한 상태다. 2년 내 다시 갈 곳을 찾아야 한다.

 

탈북민 혐오와 탈북민 관련 시설 님비현상은 각종 지표로도 확인된다. 1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3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민에 대해 한국인이 느끼는 친근감은 2007년 조사 시행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안 8년 만인 2020년 문을 연 서울 강서구 남북통합센터 전경. 통일부 제공

◆각종 조사 악화하는 지표 “거리감 커졌다”

 

‘탈북민에 친근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2021년 24.3%, 2022년 23%, 2023년 19%로 하락했다. ‘탈북민에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2021년 27.2%, 2022년 32.3%, 2023년 31.8%로 내내 더 높았다.

 

탈북민 국내 입국에 대해서도 ‘원하는 사람 중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응답이 53.3%로 가장 높고, ‘원하는 사람은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32.5%로 더 낮다. ‘더 이상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도 14.2%에 달한다.

 

탈북민 지원정책 추가에 대한 인식은 2007∼2015년에는 찬반이 엎치락뒤치락했지만,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반대가 압도하는 추세다. 2016년 추가 지원에 ‘동의하지 않는다’가 57.8%로 ‘동의한다’(42.3%)를 역전한 뒤, 2020년엔 반대 68.3%, 찬성 31.8%로 두 배 이상 벌어졌다.

 

탈북민에 대한 남한 원주민의 거리감은 국내 이주민 그룹 간 비교에서 더 적나라하다. 지난해 그룹별 친근감을 비교하면, 미국인 39.6%,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인 31.4%, 일본인 22.3%, 조선족 21.1%, 탈북민 19%, 고려인 14.7%, 중국인 11.4%, 중동인 6.8% 순이다. 탈북민이 8개 그룹 중 4번째다. 2021년엔 미국인 35%, 탈북민 24.3% 순으로, 8개 그룹 중 두 번째였던과 비교하면 크게 후퇴했다.

 

◆“미래에도 악영향”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로, 탈북민 통합은 ‘통일 준비’에 비교되곤 한다. 탈북민에 대한 현재 인식이 부정적인 만큼 미래 갑작스러운 통일이나 급변 사태 시의 대응에도 부정적이다.

 

앤케이소셜리서치의 연례 보고서 ‘2023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북한 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대응책으로 ‘같은 동포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살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받아야 한다’(전원수용)는 응답은 40%에 불과했다. ‘경제적 능력과 외교적 부담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선별수용)는 응답이 50.1%로 더 높았다.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응답도 9.9%나 됐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선별수용이 전원수용보다 높게 나타났다.

선별수용이 전원수용을 앞서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였다. 앤케이소셜리서치는 “남북관계 개선은 희망하지만 북한 난민과의 공동생활은 거부하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북관계·미디어 영향 커”

 

탈북민에 대한 거부감 변동 추이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대 조사에선 남북관계가 좋을수록 수용도·친근감이 높아지고 탈북민과 만나본 경험이 있을 경우에도 높아진다. 또 북한 인권을 심각하게 보는 사람일수록, 통일에 동의할수록 탈북민에 대한 수용도와 친근감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정치권에선 탈북민 어젠다가 보수의 어젠다로 여겨져왔지만 실제 국민인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탈북민에 대한 인식에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정비례해 투영된다. 보고서는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진보 성향일수록 탈북민에 대한 인식, 수용도, 추가 지원 증대에 모두 긍정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진보가 강조하는 남북관계가 좋을수록, 보수가 강조하는 북한인권의 심각성에 동의할수록 수용도·친근감이 동시에 높아지는 것도 제도권 정치세력의 의도와는 엇갈리게 작용하는 현상이다.

 

조현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탈북민은 계속해서 증가해왔지만 탈북민에게 느끼는 친근감이나 거리감은 그에 발맞춰 개선되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북한인권 심각성 인식 증가로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는 수용도는 증가하더라도 실질적인 친근감은 하락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 하반기 전문 기관들이 내놓을 보고서에는 인식이 더욱 악화할 전망도 나온다. 최은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언론에서 북에 대해 나쁜 내용이 나오거나 남북관계가 나쁘면 그게 탈북민에게 투영된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탈북민에게도 우호적이고 남북관계가 안 좋으면 북에 대한 반감이 그대로 전가되는데 최근 몇 년간 남북관계가 굉장히 안 좋아 탈북민에 대한 반감도 높게 나타났다”며 “근본적으로는 남북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풀리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올해는 대북전단 문제가 심각했고 가장 앞장선 주체가 ‘탈북민인권단체’로 언론에 계속 노출됐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인식은 더 악화됐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최 선임연구원은 탈북민은 국내에서 분단 체제, 남남갈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탈북민들은 한국에선 동정의 대상이거나 가능성 있는 간첩, 북한과 내통하거나 위험을 주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 둘 사이에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들어갈 틈이 없다”고 했다. 이어 “두 프레임 다 일반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동정하면 먹여살려야 할 부담스러운 대상으로, 대한민국에 자유를 찾아온 사람이라고 강조하거나 잠재적 간첩으로 보는 것 모두 부담스러운 존재고 탈북민도 그렇게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이 같은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말하는 정체성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 세대 탈북민은 자신을 ‘북향민‘으로 봐달라는 등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는데 대한민국은 그들을 다시 끄집어와서 언론, 정부가 말하는 프레임 안에 가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탈북민 인식도 개선될 거란 말도 하지만, 그것도 다문화 감수성이 바탕이 돼야 하는 것”이라며 “탈분단과 다문화를 연결해 공존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안유진 '아찔한 미모'
  • 안유진 '아찔한 미모'
  • 르세라핌 카즈하 '러블리 볼하트'
  • 김민주 '순백의 여신'
  • 한지은 '매력적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