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갈색 털에 검은 수염과 긴 주둥이. 도심에서 이 동물과 맞닥뜨렸다는 목격담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들개인 듯 길고양이인 듯하지만,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는 야생동물 너구리다. 너구리의 몸무게는 4~10㎏ 정도 나가며 몸길이는 40~68㎝까지 자라는 갯과 동물이다.
국내에서 ‘너굴맨’으로 잘 알려져 있는 라쿤(미국 너구리)과는 다른 종이다. 너구리는 공격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새끼가 있을 땐 사람이나 반려견을 공격할 수도 있고
공수병이라고도 불리는 인수 공통전염병인 광견병에 감염돼 있을 위험성도 있다.
최근 이런 너구리가 도심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어 감염병 전염이나 물림 사고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너구리가 길고양이를 위해 설치해 둔 먹이터에서 고양이 사료를 먹이원으로 삼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13일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6~10월 서울 은평구 녹번동, 강남구 대모산, 중랑구 봉화산, 성동구 서울숲 등 59개 지역에 센서 카메라 203대를 설치해 관찰한 결과 25개 자치구 중 24개 자치구에서 너구리가 포착됐다.
국립생물자원관 야생동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산지와 구릉의 너구리 서식밀도는 2018년 1㎢당 3.3 마리에서 지난해 1㎢당 2.8 마리로 줄어들었다. 이는 개체수가 일정하다고 가정했을 때 일부 너구리가 산지와 구릉에서 도시로 넘어왔음을 뜻한다. 서울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한 너구리도 2018년(49마리)와 비교해 지난해(80마리) 63.3% 증가했다.
도심 속 너구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 잡식성이 너구리는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나 죽은 동물 사체 등을 주로 먹는다. 몇 년 전부터는 길고양이를 위해 마련된 사료도 너구리의 먹이 목록에 추가됐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서울 도심지 출몰 야생 너구리 실태조사 및 관리 방안' 보고서에는 “고양이 먹이터가 설치된 구간에서 너구리 촬영 빈도가 높았다”며 “너구리가 고양이 사료를 주요 먹이원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적혀있다.
너구리가 도심 공원으로 모여든 이유는 생태계 파괴로 기존 서식지에서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너구리들이 도심에서 인간의 개입으로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보고서는 “불법개발과 벌채 등은 기존 자연생태 서식지를 파괴해 환경을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하는 너구리의 도심지 내 유입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의 너구리 서식밀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보건과 생태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야생 너구리의 행동권은 0.4∼0.8㎢다. 이 점을 고려했을 때 서식밀도가 높을 경우 영역 다툼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새끼 너구리는 생후 9개월이면 어미로부터 독립하는데, 도심의 경우 이동하는 과정에서 로드킬을 당할 수 있다. 인간은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와 접촉하면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고, 2013년 이후 발병 기록은 없지만 광견병이 전파될 수도 있다.
광견병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동물에 사람이 물렸을 때 발생하는 급성 뇌척수염이다. 뇌염과 신경 증상 등 중추신경계 이상을 일으키고 치사율이 굉장히 높은 인수 공통감염병이다.
이 같은 이유로 너구리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인위적인 개입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서울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도심 너구리 출몰 빈도를 낮추려면 산림과 하천 등 주요 서식지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먹이원 관리를 위해 캣맘 등록제 등을 도입해 길고양이 급식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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