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 우리 정치권의 최대 현안은 ‘5공 청산’이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이른바 ‘1노3김’의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김대중(DJ) 총재의 평화민주당, 김영삼(YS)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은 힘을 합쳐 노태우정부를 공격하며 “5공 핵심 인사들을 구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나마 올림픽 개막이 임박해 DJ 등 야권 지도자들 주도로 ‘정쟁 중단’ 합의가 이뤄진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2002년 5∼6월 한·일이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DJ는 아들을 비롯한 친인척 및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온갖 스캔들로 지지율이 땅에 떨어졌다. 아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다. DJ는 “월드컵 기간 과거 서울올림픽 때와 같이 정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에 야당도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한국이 예상을 깨고 4강까지 오른 것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투지 덕분이겠으나, 대회 내내 정쟁을 멈추고 하나로 뭉친 여야의 성원도 한몫했을 것이다.
요즘 프랑스 국내정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집권당은 최근 총선에서 164석을 얻어 2위에 그친 반면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193석으로 원내 1당 지위를 차지했다. 143석을 기록한 극우 성향 국민전선(RN)은 3위에 포진했다. 하원 전체 577석의 과반(289석 이상)을 확보한 단일 세력이 없는 가운데 “우리가 총리 후보자를 추천하고 정부를 구성할 것”이란 NFP의 선언은 역시나 중도와 우파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NFP를 구성하는 핵심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와 사회당이 그제 새 총리 후보자 지명 및 정부 구성에 관한 협의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논의가 난항에 봉착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긴 했으나, 실은 파리올림픽 동안 정쟁을 자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오는 26일 개막해 보름간 이어질 올림픽 기간 프랑스 정부는 마크롱이 임명한 가브리엘 아탈 현 총리가 이끌게 됐다. 프랑스 정국의 혼란이 인류의 제전 올림픽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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