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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으로 기분 나타내는 연습도 필요해
감정 일기 쓰면 심리치료 받는 것만큼 효과

정상적인 감정을 창피하게 여기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면 건강에 해롭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슬퍼도 참아야 해”라고 교육받고 자랐다면 감정을 억압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면 안 돼. 그건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야!”라고 훈육 받은 사람은 외로울 때마다 “혼자가 편해”라는 말로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덮어버리게 된다.

자기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일컬어 ‘감정표현불능증 Alexithymia’이라고 한다. 그리스어에서 기원된 용어로 ‘영혼(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음’을 의미한다. 감정표현불능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정서를 언어화하지 못한다. 솔직한 기분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한다. 우울함이나 불안처럼 불편한 감정이 일어나면 주의를 딴 곳으로 돌려 버린다. 이런 사람은 정서적으로 고통을 겪어도 타인에게 제대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내면에 쌓인 감정은 신체 증상으로 표출된다. 스트레스성 두통이나 위장장애가 생기는 원인도 감정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화병도 같은 이유로 생긴다.

감정을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안절부절 말고 “지금 내가 느끼는 건 불안”이라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 본다. 우리가 느끼는 정서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한데 그것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으로 단순화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비참하다는 감정은 슬퍼도 느끼고, 좌절을 경험하면 솟아오르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생긴다. 우울과 불안은 엄연히 다른 감정인데도 “너의 기분이 어떠니?”라고 물었을 때 이 둘을 뭉뚱그려서 “그냥 짜증 나!”라고 말하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단순히 “싫은 감정”이 아니라 “때로는 슬프고, 아련하고, 우울하고, 저릿하고, 가슴이 먹먹하다”며 입체적으로 느낌을 표현하도록 노력하면 좋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어휘와 연결되면 섬세하게 표현해낼 수 있게 된다. 감정 어휘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을수록 감정 표현도 풍부해진다.

여러 심리 연구 결과를 보면 세밀하게 감정을 구분해낼 줄 아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덜 고통스러워한다. 충동과 욕구를 잘 조절해서 과음이나 폭식에 빠지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력이 풍부한 초등학교 5~6학년 학생은 성적도 좋고 사회적 행동도 능숙하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사회 공포증이나 우울증 환자는 감정 분화가 잘 되어 있지 않다.

감정 일기를 쓰면 심리치료를 받는 것만큼 효과가 좋다.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기 위해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떼어둔다.

감정 경험을 늘려 가면 좋다. 여행을 하고,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고, 삶이 녹아 있는 영화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살펴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런 경험들로 뇌를 자극하면 감정 개념을 더 많이 습득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접촉하면 느끼는 힘이 길러진다. 감정적으로 지혜로운 친구를 곁에 두고 그와 시간을 보낸다. 감정적으로 솔직해질 수 있는 동료가 곁에 있으면 좋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자기감정도 되돌아볼 수 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감정 경험을 확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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