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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올림픽이 한창인 프랑스 파리의 센강(江) 북단을 따라 달리는 도로에 알마 터널이란 곳이 있다. 1997년 8월31일 한때 영국 왕세자빈이었던 다이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36세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곳이다. 당시 다이애나와 그 남자친구가 탄 승용차가 촬영을 위해 따라붙는 파파라치들의 차량을 따돌리려고 과속으로 달리다가 터널 내 중앙 분리대에 부딪힌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터널과 가까운 곳의 광장에는 1989년 세워진 3.5m 높이의 ‘자유의 불꽃’ 조각상이 있다. 원래 목적은 프랑스와 미국의 200년 넘는 우정을 기리는 것인데, 교통사고 지점 바로 옆에 있다는 이유로 다이애나 추모비 역할을 하게 됐다.

프랑스 파리 알마 터널 인근에 있는 ‘자유의 불꽃’ 조각상. 프랑스와 미국의 우정을 기리고자 1989년 조성한 기념물인데, 오늘날에는 1997년 알마 터널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의 추모비처럼 인식된다. 위키피디아

해마다 8월31일이 다가오면 이 자유의 불꽃 주변에는 다이애나의 비극적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이 붙인 쪽지와 놓고 간 꽃다발이 넘쳐난다. 그래서일까, 2019년 파리시는 자유의 불꽃이 있는 광장 이름도 ‘다이애나 광장’으로 바꿨다. 그 전에는 그리스에서 태어나 파리 오페라 무대에서 오래 활동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이름을 딴 마리아 칼라스 광장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칼라스를 기억하는 이는 줄어들고 다이애나를 애도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으니 어쩔 수 없이 내려진 결정일 것이다. 오늘날 파리를 찾는 이들에게 자유의 불꽃에 관해 물으면 ‘다이애나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다이애나 사망 후 영국 왕실을 대하는 시선은 싸늘해졌다. 사실 다이애나는 1992년부터 남편이자 영국 왕세자인 찰스와 별거했다. 찰스가 카밀라 파커 보울스란 이름의 여성과 대놓고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1996년 8월 정식 이혼 후 꼭 1년 만에 다이애나가 사망했으니 영국 국민들 사이에선 ‘찰스가 전 부인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의 감정이 들끓었다. 찰스가 2005년 카밀라와 재혼했을 때 영국 국민들이 차가운 시선을 보낸 것은 당연했다. 카밀라는 왕세자의 아내이면서도 과거 다이애나가 지녔던 ‘왕세자빈’이란 호칭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별세 직후 장남 찰스 3세가 영국 새 국왕으로 즉위하며 비로소 ‘왕비’ 직함을 얻을 수 있었다.

1981년 7월29일 당시 영국 왕세자 찰스(오른쪽)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모습. SNS 캡처

지금으로부터 꼭 43년 전인 1981년 7월29일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당시 ‘세기의 결혼’이라며 전 세계 언론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던 것을 잊지 못 하는 이가 많을 법하다. 영국 성공회 의식에 따라 치러진 둘의 혼례는 전 세계 100여개 나라 약 7억명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그때 신랑 찰스의 나이 32세였고 신부 다이애나는 20번째 생일을 맞이한 직후였다. 현재 75세의 고령으로 암 투병 중인 찰스 3세는 40여년 전의 그 화려했던 결혼식을 기억하고 있을까. 고인이 된 다이애나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 한켠에 분명히 묻어뒀을 것이라고 믿는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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