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자살률 OECD 국가에서 최악
노동력 부족 심각한데 대책은 느슨
2차 베이버부머 ‘고용 연장’ 급선무
지난달 한 국책연구소가 은퇴한 노인들을 해외로 이주시키자는 인구 정책 보고서를 내 논란을 일으켰다. “노령층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해 은퇴 이민 차원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생산가능인구 비율을 양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해서다. 노령층을 사회에 부담이 되는 ‘퇴물’ 취급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 저변에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노인 폄하·경시 풍조는 우려스럽다. 선거 때가 되면 더 노골적이다. “지금 최대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 빨리빨리 돌아가셔야 한다”, “60대, 70대는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로 투표해야 하느냐” 등 정치인들의 망언이 끊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틀딱충’ ‘연금충’이라며 노인들을 비하하고 있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난 10일 기준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19.51%다. 이르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국민 5명 중 1명은 노인이라는 얘기다.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 2070년에는 노인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한다니 두렵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의 고령화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 관련 각종 지표는 최악이다. 노인 빈곤율(39.3%)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12.4%)보다 3배 이상이다. 폐지 줍는 노인이 4만명이 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고립은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로 이어졌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10만명당 39.9명)은 압도적이다. OECD 평균(17.2명)의 두 배가 넘는다. 고독사한 노인의 주검이 몇 달, 몇 년 뒤에 발견되는 비극마저 벌어지고 있다.
초고령사회가 다가오면서 노동력 부족, 연금 고갈, 노인 연령 기준 재조정 등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안이하고 느슨하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5월에야 ‘고령사회 대응 정책방향 수립 계획’을 발표하고 고령사회 대응 정책추진단 가동에 들어갔다. 연금개혁은 아직도 ‘폭탄돌리기’만 하고 있다. 저출생 해소에 급급해하느라 노인 문제는 방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동력인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생산가능인구는 3633만명으로 4년 전보다 105만명이나 감소했다. 2030년부터는 해마다 50만명씩 줄어 2040년에는 3000만명 이하로 떨어진다. 한국은행은 60대 고용률이 지금 같다면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 출생한 954만명) 은퇴로 경제성장률이 2024~2034년에 연간 0.38%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경고다.
2차 베이비부머들이 올해부터 법정 은퇴연령(60세)에 순차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은퇴 후에도 일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건강하며, 교육 수준과 정보기술(IT)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수십 년간 대기업 등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쌓은 이들을 더 일하게 하는 게 국가경제에도, 개인에게도 좋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인, 편의점 알바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들은 연금 수급 시기를 늦춰 일하는 나이를 60대 중반까지 늘리고 있다. 일본은 기업들이 임금을 낮추면서 적게는 65세, 많게는 70세까지 근로자들을 ‘계속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하지만 우리는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저출생 해소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려면 50대 후반, 60대 ‘젊은 은퇴자’들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야 한다. 고령 인구 증가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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