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개 주에서 최소 187건 시위
성난 시민들 마두로 포스터 짓밟아
野후보 “73% 득표, 우리 승리” 기름
경찰, 최루탄 쏘며 시위대 해산시켜
현지 인권단체 “1명 사망·46명 체포”
국제사회도 비난… 정치·외교 대혼란
中 시진핑, 마두로에 축전 지지 밝혀
지난 28일(현지시간)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의 부정선거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전국적으로 불복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인근 중남미 국가 등 국제사회도 선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베네수엘라가 정치·외교적 대혼란에 빠졌다.
2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수도 카라카스와 수크레·야라쿠이주(州) 등 전국 20개 주에서 최소 187건에 이르는 대선 불복 시위가 벌어졌다. 카라카스에서는 대규모 청년 시위대가 주요 도로를 행진하며 선거에서 승리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를 떼어내 짓밟았고, 직장인들까지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방식의 ‘카세롤라소’(cacerolazo) 시위에 참여해 “자유”를 외쳤다.
팔콘주에서는 시위대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마두로 대통령은 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차비스모’(차베스의 좌파 포퓰리즘 이념)를 승계하며 10년 넘게 재임해왔다.
경찰은 최루탄을 이용해 시위대 일부를 해산했는데, 이 과정에서 난투가 벌어지며 야라쿠이주에서 최소 1명이 사망하고 46명이 체포됐다고 현지 인권단체 포로 파넬은 전했다.
야권 후보였던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74)와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6)는 이날 밤 자신들이 입수한 개표 데이터를 공개하며 “(우리는) 73.2%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선언, 항의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마차도는 곤살레스 후보가 약 620만표를 받아 270만표를 받은 마두로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주장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개표 결과(마두로 51.2%, 곤살레스 44.2%)와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선관위는 이날까지도 공식 개표 결과를 웹사이트에 게시하지 않았으며, 약 3만대의 투표 기기 집계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야당 측 참관인 대다수가 개표 검증에 필요한 ‘검수표’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베네수엘라 투표는 전자기기를 이용해 이뤄지는데, 유권자는 기기에서 자신이 뽑은 후보가 기록된 검수표를 받고 이를 투표소 내의 투표함에 넣는다.
마두로 대통령은 선관위의 당선자 발표 후 24시간도 안 돼 속전속결로 당선증을 받으며 결과에 쐐기를 박고,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야권 압박에 나섰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국민과 함께한 평화적 승리에 야당 무리가 쿠데타를 시도하고 있다”며 야권을 몰아세웠다. 이와 함께 베네수엘라 법무부 장관은 이날 검찰이 마차도를 비롯한 야당 지도부 3명을 선거 시스템을 해킹한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마두로 정권에 장악돼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후폭풍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우루과이, 페루,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등 우파 성향 중남미 9개국은 미주기구(OAS)에 베네수엘라 대선 개표 결과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긴급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유럽연합(EU)도 모든 개표 결과를 공개·검증할 것을 촉구했으며 2018년 마두로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과 민주주의 탄압 등을 이유로 베네수엘라를 제재 중인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우리는 잠재적인 새로운 (제재) 시나리오에 직면해 있다”며 대선 결과의 공개 여부에 따른 새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마두로정부는 선거 결과에 문제를 제기한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우루과이 등 7개국 외교관을 추방키로 하는 등 외교적으로도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주재 한국대사관도 이날 교민들에게 “대선 결과를 둘러싼 긴장 상황이 예상되니 동포 여러분께서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반면, 베네수엘라와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져온 중국은 부정선거 의혹이 국제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두로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며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고, 러시아도 “야당은 대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친러시아’ 성향인 현 정권을 두둔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