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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대낮 같은 더위’…새벽 책임지는 배달·택배 노동자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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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04 19:02:02 수정 : 2024-08-04 1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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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선선해지나 싶었는데 새벽까지 푹푹 찌네요.”

 

4일 오전 2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만난 배달기사 A씨는 헬멧 사이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바빴다. 전국적으로 열대야가 열흘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이 시간 기온은 28.2도, 습도는 66%로 체감온도가 29도에 달했다. A씨가 배달을 위해 한 오피스텔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2분22초 남짓. 그사이 A씨의 옷은 소금기로 얼룩진 채 땀범벅이 됐다. 오피스텔이나 상가 등지의 실내공간이 새벽에는 냉방장치를 꺼둔 채 창문까지 닫아두는 경우가 많아 사우나처럼 푹푹 찌는 탓이다. 가쁜 숨을 달랠 틈도 없이 갓길에서 대기하던 A씨의 휴대전화에는 곧바로 다음 배달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지난 1일 오전 0시20분쯤 서울 강남구 강남취·창업허브센터 뒤편 이동노동자 전용 쉼터 ‘얼라이브 스테이션’에서 한 남성이 책상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다. 윤솔 기자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의 무더위가 밤에도 이어지면서 심야시간대 음식이나 택배를 나르는 배달노동자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밤에도 식지 않으면서 도로 위를 달리는 배달노동자들은 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밤낮으로 펄펄 끓는 폭염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배달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경우 정부는 시간당 10분 휴식시간 제공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말그대로 권고인데다,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배달노동자에게 10분간의 휴식은 먼 얘기다. 

 

4일 오전 2시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서 배달을 위해 건물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 온도를 측정해 본 결과 라이더의 몸과 바로 맞닿는 핸들과 시트 부위의 표면 온도는 30∼32도를 웃돌았다. 측정은 음식을 가지고 이동하는 사이 양해를 구하고 진행했다. 윤솔 기자 

기자가 이날 화곡동 일대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주로 다니는 주택가 도로 10곳의 표면 온도를 적외선 온도기로 측정한 결과 29.6∼30.7도 사이로 나타났다. 배달을 위해 잠시 정차한 오토바이 3구의 핸들·시트 부위의 온도는 30~32.4도였다. 배달과정에서 대부분 헬멧을 착용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배달노동자가 체감하는 온도는 이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더위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도 10분간의 휴식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식당에서 라이더에게 배달을 요청하는 ‘콜’이 들어왔을 때 라이더가 ‘거절’을 하는 경우 수락률에 타격을 주게 된다. 휴식시간을 확보하려면 완전히 업무 종료 상태(오프라인)로 전환해야 한다. 라이더 B씨는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면 배달 대기조차 안 하는 상태가 되는데, 배달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닌 이상 1시간마다 그러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대부분 콜과 콜 사이에 뜨는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쓴다”고 말했다. 

 

배달 플랫폼은 폭염이 발효됐을 때 배달 수수료에 1000원 남짓을 더해주는 ‘기상할증료’를 제공하는데, 이것이 휴식보단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높다. 라이더 이모(48)씨는 “단가를 올리면 타는 사람이 생기니까 (플랫폼은) 돈만 더 주면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라이더를 인간 취급 안 하는 것 같다”며 “기온이 너무 높을 땐 배달 수수료를 높일 게 아니라 작업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몇몇 플랫폼은 기상할증료 기준도 뚜렷하지 않아 라이더들의 민원 제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파이낸스센터 인근에 위치한 이동노동자 전용 쉼터에 고마움을 표하는 메시지가 벽면 가득 적혀 있다. 윤솔 기자 

◆에어컨 없이 폭염 속 근무…조퇴자 속출

 

새벽배송 업체의 택배 분류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도 더위에 노출돼 있긴 마찬가지다. 6년 가까이 쿠팡에서 택배 분류 업무를 해 온 남모(27)씨는 “여름에 강풍기를 켜긴 하는데 그냥 더운 공기 좀 섞어주는 수준이다”며 “개방된 건물이라 에어컨을 못 놓는 건 이해하겠으니 선풍기라도 열마다 좀 붙여놨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남씨는 “올해 들어서는 야간에 휴식시간을 추가로 받은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공개한 물류센터 폭염현황판에 따르면 인천 서구의 한 물류센터에서는 지난달 24일 오후 7시쯤 2·3층 내부 온도가 30∼35도까지 오르면서 어지럼증과 숨막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발생했다. 대전 중부권광역우편물류센터에선 이달 1·2일 내부 기온이 30도를 돌파하면서 에어컨을 가동했는데도 조퇴자가 속출했다.

 

특히 야간에는 센터 내 온도가 더 높았는데도 휴게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경기 안성에 위치한 한 물류센터는 7월 중순부터 오후 1시쯤 항상 휴게시간 15분을 제공하고 열피난처를 사용했는데, 전날 오후 9시47분에는 실내 온도가 30도로 휴게시간이 주어졌을 때보다 더 높았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배달기사, 퀵배송 기사, 대리운전 기사 등 이동노동자에겐 그나마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배달노동자 쉼터가 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이마저도 서울 일부 지역에만 위치해 있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강남구의 경우 지난해 5월 이들이 작업 중에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역삼동 서울취창업센터, 서울파이낸스센터 옆에 작은 이동노동자 전용 쉼터를 마련했다. 신논현역 도보 5분 거리에는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가 2016년부터 운영 중이다. 하지만 서울 내 휴서울이동노동자 쉼터는 4곳 뿐이고, 강남구처럼 간이 쉼터를 마련한 지자체도 극히 일부 뿐이다. 쉼터에서 만난 대리기사 장모(52)씨는 “쉼터가 생기기 전에는 버스정류소나 편의점 벤치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기해야 했다”며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이런 간이 쉼터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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