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사들이 폭행·성추행” 망상 시달려
‘스승찾기’ 이용…수업 종료 기다렸다 범행
2심서 “따뜻했던 분” 반성…징역13년 확정
고등학교 시절 교사들이 자신을 폭행하고 누나를 성추행했다는 등 피해망상에 빠져 교사에 흉기를 휘두른 20대 남성에게 징역형이 확정됐다.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며 사죄의 뜻을 전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28)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3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10년 부착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해 8월4일 오전 10시2분쯤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 B(50)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달아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당시 2층 교무실에 들어와 B씨를 찾았고, 수업 중이라는 말을 듣자 1시간 동안 기다렸다. 방학이 끝나 90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던 상황이라 A씨는 별다른 제지 없이 정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왔다.
그는 기다림 끝에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B씨를 발견,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 흉기를 휘두른 뒤 달아났다. 이후 2시간10여분 뒤 범행 장소로부터 7~8km 떨어진 대전 중구 자신의 집 근처 도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얼굴과 옆구리 등을 흉기에 10여차례 찔린 B씨는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았다.
A씨는 2021년 6월부터 우울장애로 치료를 받았다. 2022년 8월부터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사들이 자신의 뺨을 때리거나 발목을 잡아끌고 단체로 집에 찾아와 누나를 성추행하는 등 괴롭혔다는 등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다.
담당 의사는 A씨에게 정신 질환을 진단하고 입원치료를 권유했지만, A씨는 2022년 12월 면담 치료 과정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도 복수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거나 멍청한 짓”이라며 치료를 중단했다.
이후 같은 해 주동자로 여긴 피해자 B씨를 경찰에 고소까지 했으나 증거가 없다며 반려당하기도 했다. 복수 방법을 바꾸기로 결심한 그는 대전교육청 홈페이지 ‘스승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과거 재학 시절 교사들의 소재를 확인했다. A씨의 가족과 교사들, 동급생들은 이 같은 피해망상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A씨는 범행 직전인 지난해 7월14일 흉기를 준비해 B씨가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고, 그 다음달 4일 다시 찾아가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B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오랜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중상을 입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10년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명백한 살해 의사를 갖고 범행했고 다행히 피해자가 목숨을 잃지 않았으나 오랜 시간 재활이 필요한 상태로 정신적 고통 역시 크다”며 “다른 사람에 대한 위험과 사회적 불안감도 큰 범행으로 정신질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나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1차 공판에서 A씨 측은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심신미약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A씨는 자필 항소이유서와 반성문을 통해 “수감 중 계속해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며 “피해자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을 갖고 있던 것은 피해망상이었다. 사실 피해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주신 분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고 밝혔다.
2심은 1심을 파기하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에 따라 감형된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피고인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보다 높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불복했으나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이 사건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상고 이유로 주장하는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원심이 징역 13년 등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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