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미수’ 30대 남성, 징역 15년 복역
피해자 “보복 두렵다” 정신과 치료 중
“경찰, 빌미 제공” 국가에 손배소 청구
헤어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신고를 당하자 직장까지 찾아가 흉기를 휘두른 가해 남성이 징역 15년형을 확정받은 가운데, 피해 여성이 국가를 상대로 1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수차례 도움 요청에도 경찰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부산 멍키스패너’ 사건은 지난해 3월2일 오후 4시55분쯤 부산에 있는 김모(33)씨의 직장에서 발생했다. 김씨와 헤어진 지 2주가량 된 30대 남성 A씨가 직장에 찾아와 멍키스패너로 김씨 왼쪽 머리 부위를 머리를 내려친 뒤 흉기로 가슴 부위를 여러 차례 찔렀다. 김씨는 갈비뼈가 절단되고 장기까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응급수술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김씨는 신경이 절단돼 복대를 착용하며 힘겹게 재활해야 했다.
◆ 도박·사채 문제로 결별…“다시 만나줘” 자해 소동
이들은 2020년 7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부터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김씨 집에서 함께 생활도 했다. 3년 가까이 연애하던 두 사람은 A씨의 사채와 도박 채무 문제로 김씨가 이별을 고하면서 지난해 2월 헤어졌다. 악몽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헤어진 상황에서도 A씨의 집착은 심해졌고 급기야 스토킹으로 이어졌다.
이별을 통보하고 6일째 되던 날, A씨는 김씨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자해 소동을 벌였다. A씨는 지난해 2월23일 오후 11시쯤 평소 알고 있던 김씨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로 문을 열고 들어가 집 안에 있던 칼을 손에 들었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그으려 했고, 김씨는 놀라 이를 빼앗았다. 그러자 A씨는 이번엔 근처에 있던 가위를 들고 “다시 만나달라”며 자신의 손목을 긋고 재결합을 요구했다.
김씨는 지속적인 스토킹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그럼에도 스토킹이 이어지자 스토킹 범죄로 A씨를 신고했다. 김씨는 “가해자는 술병을 깨고 집 근처를 배회하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보였다”며 “연락을 차단하자 가족을 통해 연락했고 결국 경찰에 접근금지 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접근금지를 고지했으나 A씨는 그 이후에도 주거 및 직장에 찾아가 기다리는 등 계속 김씨 곁을 맴돌았다.
◆ 스토킹 신고에 앙심 품고 범행…소용없던 접근금지 명령
A씨는 전 연인이 자신을 신고했다는 데 앙심을 품고 직접 흉기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김씨의 집에 불법 침입해 위협한 지 일주일가량 뒤인 지난해 3월2일 낮 A씨는 30㎝가량인 멍키스패너와 날 길이만 13㎝인 식칼을 샀다. 그는 흉기를 갖고 김씨가 일하고 있는 직장을 가서 계속 만남을 요구했다. 김씨는 거절했고, 스토킹 혐의로 첫 경찰 피의자 조사가 예정돼 있던 A씨는 김씨에게 “연락 꼭 받아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후 A씨는 경찰서 인근에 멍키스패너와 흉기를 버린 뒤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조사를 받던 도중 경찰관에게 김씨가 “도와달라”며 전화한 것을 우연히 듣고 더 큰 앙심을 품게 됐다. 화가 난 A씨는 김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경찰에 “다른 여자가 생겼다. 조사 후 바로 고향으로 갈 것이다” 등의 말을 하고 훈방 조치됐다. 경찰 조사를 마친 그는 버렸던 멍키스패너와 흉기를 다시 주워 점퍼 주머니에 넣고 다시 김씨 직장으로 향했다.
오후 4시55분쯤 김씨를 발견한 A씨는 “왜 (경찰에) 내가 찾아온 사실을 알렸냐”며 따졌고, 김씨가 112 신고를 하려 하자 “나 큰마음 먹고 왔다. 네 주변 사람을 없앨까, 너를 없앨까”라고 말하면서 흉기로 김씨를 겨눴다. 놀란 김씨는 “제발 이러지 말라.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A씨는 흉기에 찔려 도망가려는 김씨를 쫓아가 다시 흉기를 두번가량 더 휘둘렀다. 당시 김씨의 비명을 듣고 나온 동료들에 의해 간신히 제압됐으나 이 과정에서 동료들까지 부상을 입었다. 한 동료는 범행 현장을 목격하고 정신적 고통으로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 가해자母·경찰, 수차례 도움 요청에도 안일 대응
가해 남성의 어머니는 이 사태를 알면서도 방관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두려움을 호소하는 제게 가해자 어머니가 ‘걔가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 ‘알다시피 애 같은 게 있다’ ‘너만 눈에 들어오니까 그런다’ ‘다시 만난다고 하면 풀어질 거다’ ‘네가 이해해라’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헤어짐을 요구했더니 제 입을 찢어놔서 가해자 어머니에 연락했더니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다’ ‘폭력성 없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씨 측에 따르면 가해 남성이 재판에 넘겨지자 이 남성의 가족들은 재판부에 “김씨 가족이 피해 이후 축제 행사장에 있었다” 등 허위 사실을 기재한 선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가해자의 어머니는 탄원서에 “지난해 10월 한 축제 행사장에서 ○○이(피해자)와 그 가족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었던 ○○이(피해자)가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 하늘이 무너지고 야속하기도 하다”고 적었다.
김씨는 A씨 어머니뿐 아니라 경찰에도 수차례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경찰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건 직전 A씨가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해 흉기로 협박하고 상해를 입혔으나 경찰은 가해자 신병 확보나 적절한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담당 수사관이 A씨 조사 도중 자신과 통화하며 피해 신고 사실을 노출, 피해자 비밀누설 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추가 범행 빌미를 제공했다고 꼬집었다. 1심 판결문에도 A씨가 본인에 대한 신고 사실을 고스란히 목도하며 앙심을 품게 됐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김씨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경찰관이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국가가 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경찰관이 주어진 역할을 다했다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는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 징역 15년 확정…피해자 “출소해도 40대, 보복 두렵다”
살인미수, 스토킹 범죄의 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는 지난 3월28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징역 15년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김씨는 A씨가 출소 후에도 40대밖에 되지 않는다며 다시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김씨는 사건 발생 후 1년 반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김씨는 YTN에 “교제폭력 피해자는 수사기관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현실이 기대와 달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정에서는 피해자인 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판사는 ‘피고인을 한 번 더 믿고 기회를 준다. 또 그러면 전자발찌를 부착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때 ‘내가 죽었어야 전자장치가 부착되고,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다”며 “가해자 출소 이후에도 피해자가 마음 편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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